[살며 생각하며] 가을 바람이 불면…

아침 저녁 싸늘한 냉기 감도는 가을 바람이 불면 어느덧 세월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이 다가선다. 매년 11월은 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한 해를 마감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지난 세월 추억에 미소 짓고 가슴 설레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분주하기만 하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온 세상은 가을 정취에 젖어 단풍과 낙엽의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연출하며 시인은 가을을 찬미하며 사색에 잠기고, 가수는 쓸쓸한 슬픈 사연의 가을을 노래하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노래한 차중락은 낙엽 따라 사라져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다. 애절한 사연을 간직한 남녀간 사랑을, 추억은 밤 새워 낙엽 지는 소리에 울컥하며 기나긴 밤 추억의 몸부림으로 하얗게 지새운다. 가을 바람이 불면 가을 낭만과 추억이 점철된 쓸쓸한 남들을 생각하면서 덧없이 지나간 세월에 대한 희비가 엇갈리며 울컥해진다.

언제나 조국의 가을을 잊은 적이 없다. 또 그 세월에 얽혔던 수 많은 기억과 추억들은 눈 감으면 영상처럼 다가오고, 사라지고, 안타까운 옛 추억에 슬그머니 센치해지고, 어느 때는 실없이 미소를 지을 때가 세월과 더불어 점점 그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조국의 가을은 언제나 북으로부터 가을 바람 따라 전해 오는 각종 단풍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설악이 온통 불바다로 물들고, 백두계간 따라 내장산의 단풍이 절정을 이룰때면 조국의 가을은 가을 정취에 흠뻑 젖어 벌겋게 달아오른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동해와 서해가 가을 바람에 춤을 추고, 농민들은 추수와 함께 풍년가를 드높이며 초롱불 등잔가에 몰여 앉아 겨울을 준비하고 한 해를 마감하며 편안한 안식을 취한다. 필자는 논산 훈련시절 벌판에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피어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연인 생각에 코스모스 한 잎 서신에 묻혀 띄울 때마다 피곤함을 잊었던 그 가을이 근 6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가을 바람이 불면 내 가슴에 항상 지워지지 않는 삼십대 나이에 헤어져간 불우한 친구가 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장가는 가고, 자식은 몇이나 두었는지? 북망산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나 있는지? 부자집 아들이였던 이문식군! 그 친구를 생각하면 세월의 무상함과 그리움에 눈물이 난다.

가을과 나의 조국 금수강산! 아직도 내 형제가 그곳에 있고,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이 카톡으로 사진과 안부를 전해온다. 유명을 달리한 부모님과 형제와 친지들의 영혼들이 그 산하에 묻혀 있고 언제인가 돌아가 그들과 함께 그곳에 영면하고 싶은 마음은 그 나라와 그 산하가 그곳에 항상 있어 가끔은 흐믓하기도 하다. 이렇게 내 마음 속에 지워지지 않는 조국의 가을! 가을 바람이 불어오면 세월의 연륜이 더할수록 고향의 그리움이 간절하고 잊지 못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고국을 향한 진한 향수와 망향의 기억이 있기 때문인듯 하다.

이제 미국생활 30년 서른 번의 미국의 가을을 살며,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의 사연을 만들고 덧없이 살아가고 있다. 뉴욕과 뉴저지의 가을! 가을 바람이 불면 왠지 고향을 잊지 못하는 코메리칸의 신세로 가끔 세계 으뜸의 뉴욕 단풍 여행길에 나선다. 11월! 뉴저지 팰리세이드 단풍길은 말 그대로 벌겋게 불타는 단풍 하이웨이 길로 불 속으로 질주하는 단풍의 진한 맛을 느껴본다. 웨스트포인트 골프장의 벌겋게 달아오른 코스에서 단풍 불 속으로 사라져가는 한 점 백구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며, 모홍크 산정에 올라 하계속에 시뻘건 불길처럼 타오르는 단풍숲의 장관은 지상 최고의 가을 모습을 연출한다.

가을 바람이 불면 이제 우리 모두는 고향이든 타향이든 어차피 짧은 인생 사는 동안 낙엽 따라 어디론가 영원히 떠나야 하는 운명을 살고 있다. 조국과 고향은 영원한 나의 마음의 안식처이며 현재를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들의 마지막 운명을 같이 해야할 육신의 안식처로 영원히 이곳에 남게 될 것이다. 가을바람이 불면 이제 머지않아 백설의 계절이 다가선다. 그리고 또 한 해가 우리 곁을 아듀한다. 가을 바람이 불면 세월은 낙엽 따라 또 한 해가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권병국 /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