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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눈을 감고 뜨다

우리 몸과 관련된 비유나 관용표현 중에 '눈'만큼 자주 쓰이는 게 있을까 싶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 되기도 하고, 눈은 사슴을 닮기도 합니다. 눈이 높아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눈을 똑바로 떠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눈으로 짓는 웃음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눈웃음이 점점 많아지는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주 기본적으로는 눈을 뜨고, 감는 단순한 행위도 우리에게는 중요한 비유와 관용표현이 됩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이 눈을 뜨고 감을까요? 눈을 뜨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눈을 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삶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마흔에게'라는 책을 읽다가 '눈을 감다'라는 표현에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책에서는 내일(來日) 눈을 뜨는 것조차 고마운 행복임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뜰 것을 의심하지 않고 삽니다. 잠잘 때 일어나지 못할까 겁내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히 내일이 오는 것이죠. 오히려 어떤 사람은 내일이 올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걱정이 많아서겠죠. 하지만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말 안 해도 알 겁니다. 이별의 말 한 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떠난다면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울 겁니다. 눈을 감는 게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는 의미가 되는 순간입니다.

잠이 드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는 자면서도 참 많은 일을 합니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수많은 정보를 정리합니다. 필요 없는 정보를 버리기도 하고, 귀한 정보를 깊숙이 간직하기도 합니다. 잠을 못 자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습니다. 잠을 못 이루면 수많은 정보가 머릿속을 떠다닙니다. 당연히 몸과 마음이 점점 피폐(疲弊)해져 갑니다. 불면(不眠)의 밤을 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잠자는 행복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물론 잠이 영원한 잠이어서는 안 되겠죠. 영원한 잠은 슬픔이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잠이나 눈을 감는 것을 죽음의 비유로 사용합니다. 다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됩니다. 다시는 이 세상을 보지 못하는 거죠. 이 세상은 보지 못하고, 어쩌면 저 세상을 보고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갑작스런 이별이 겁이 나기도 합니다. 내일 아침 우리는 눈을 뜰 수 있을까요? 내일의 태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저는 잠자리에 들 때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걱정은 툭 털어버리고 가뿐한 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내일은 올까요? 그런 걱정을 하면서 잠들지는 않겠죠.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그리 색다를 것도 없겠죠. 하지만 눈을 감는다는 말의 무게를 기억하며 아침에 눈을 뜨면 어떨까요? 눈을 뜨면 아침을 만납니다. 밝은 빛이 창문을 밝힙니다. 구석구석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세상이 나를 반깁니다. 또 다시 그리운 이를 만날 수 있는 하루가 시작된 겁니다.

오늘은 어제의 오늘이 아닙니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닙니다. 눈을 뜬다는 말이 깨닫는다는 의미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뜹니다. 매일 아침 새로워진, 새로 태어난 나를 봅니다. 우리는 날마다 깨달으며 삽니다. 오늘이 내게로 왔습니다. 선물처럼 말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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