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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로이 할러데이를 기리며

벌써 9년 전이다. 더위가 필라델피아를 괴롭히던 8월이었다. 필리스 구장에 특이한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튼튼한 안전장치와 중무장한 시큐리티 요원들이 타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것들이 클럽하우스로 옮겨졌다. 60개의 갈색 박스였다.

내용물은 손목시계였다. 개당 수천~수만 달러를 호가하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였다. 깜짝 선물의 수신자는 감독과 코치, 선수들뿐만 아니었다. 훈련 보조요원, 구장 관리인, 유니폼이나 신발 세탁을 도와주는 일용직까지 포함됐다. 박스 안에는 편지가 있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룬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로이 할러데이.'

발신자는 석달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20번째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것이다. 명품 시계는 위업을 함께 한 동료들에게 고마움이었다.

이듬해 봄의 일이다. 필리스는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성공했다. 할러데이를 비롯해 클리프 리, 콜 해멀스, 로이 오스왈트로 이뤄진 최강의 선발진을 구축했다. 에이스급 4명의 막강한 로테이션은 '판타스틱(PHantastic) 4'라고 불렸다.



한 미디어가 이들 얘기를 커버 스토리로 기획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투수 4명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런데 할러데이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왜 4명 뿐이지? 우린 5명 로테이션이잖아." 레벨이 조금 처지는 5번째 선발 조 블랜턴을 뺀 데 대한 불만이었다. 구단 홍보 파트는 부랴부랴 블래턴까지 불러야 했다. 그제서야 사진 기자는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또 있다. 성실함이다. 일화가 있다.

필라델피아로 이적한 첫 해였다. 이 팀에는 부지런하기로 손꼽히는 선수가 있었다. 작년에 다저스에서 은퇴한 2루수 체이스 어틀리다. 그는 스프링캠프 때면 늘 1등으로 출근한다.

어틀리의 회고다. "새벽 5시 45분에 출근했어요.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누군가 있더라구요. 로이(할러데이)였어요. 인사를 나누는 데 옷이 흠뻑 젖어 있는 거예요. '아까 비가 왔었냐'고 물었죠. 덤덤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아뇨. 조금 전에 훈련을 마쳤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어요. 최고가 어떤 것인 지를 깨달았죠."

현역 최고 투수인 맥스 슈어저도 기억을 보탠다. "시범경기였죠. 닥(Doc·할러데이 별명)과 선발로 붙었어요. 서로 3~4이닝씩 던졌나? 그걸로 우리 일과는 끝난 셈이죠. 차 타고 퇴근하는데 뒤쪽 보조 구장에서 그를 발견했어요. 외야에서 열심히 달리더군요. 코치나 카메라(미디어)가 올 리도 없는 곳에서 말이죠."

2017년 가을. 팀 웰켄이라는 은퇴한 스카우트가 할러데이를 만났다. 22년전 드래프트에서 고교생 할러데이를 토론토에 입단시켰던 인물이다. "이봐요 팀, 우리 아들 좀 봐요. 꽤 쓸만하죠? 우리 학교가 지금 35승 무패예요." 왕년의 최고 투수는 자신의 장남이 다니는 학교에서 투수 코치로 일하고 있었다. 무보수 자원봉사였다.

베테랑 스카우트는 빙긋이 웃었다. "그래 로이. 예전 자네 생각이 나는군. 그 때 파일(스카우팅 리포트)을 한번 찾아봐야겠어. 나중에 만나면 전해줌세." 그러나 기념품은 전달되지 못했다. 몇 주 뒤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플로리다에서 2인승 경비행기 한 대가 추락했다. 경찰은 희생자가 조종사 한 명 뿐이었다고 발표했다. 40세의 로이 할러데이였다. MLB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22일 발표된다. 후보자 35명 중에는 그의 이름도 포함됐다. 노미네이트 첫 해에 입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투표인단은 지금까지 그에게 90% 넘는 찬성표를 던졌다. 쿠퍼스타운에 가기 위한 기준선은 75%다.


백종인 /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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