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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배고프고 목마를 때

아이티의 겨울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날씨는 덥지 않다. 아침 기온이 화씨 70도에 낮에는 보통 90도쯤이다. 오래 밖에 있으면 땀이 나기는 하지만 한여름보다는 한결 견디기 수월하다. 그 겨울 낮에 먼지 나는 길을 한 참 달렸다. 도미니카 국경 근처까지 25마일 거리이지만 도로 사정 때문에 자주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면서 속도를 늦추고 가야 해서 대략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큰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오늘도 데모 때문에 길이 막혀 선생님들이 학교에 오지 못해 수업이 없다고 했다. 가져간 쌀, 콩, 식용유, 옥수수, 설탕, 생선 통조림, 화장지 등을 내리고 아이들 점심으로 먹이려고 준비한 기다란 바게트 샌드위치도 차에서 내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봉지에 담긴 물도 넉넉히 챙겨갔다.

지난 11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이 먹을 것을 공급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무서운 단어는 '끼니'였다. 아이티 고아들을 만난 이후로 끼니는 늘 약탈자처럼 다가와 두려움과 슬픔의 손을 내밀곤 했다. 하루 두 번의 끼니 중에서 굶는 것이 먹는 때보다 많았고, 깨끗하지 않은 물만 마시고 잠드는 날도 있었다.

그 물조차 귀해서 때로 타는 목마름을 눈물로 누르며 살았다. 참으로 더디게 아이들은 자랐고, 그 사이 먼저 하나님께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끼니를 이겼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 내밀었던 한 줌의 쌀이, 한 봉지의 물이 밑 빠진 독에 붓는 물 같았는데, 콩나물도 밑 빠진 독에서 자란다더니, 아이들이 그랬다. 하루 한 끼나마 제대로 먹기를 소망했는데 그 알량한 식량으로 끼니를 세면서 견디더니 아이들이 자랐다.



아이들은 어느샌가 자라 먼지 나는 길을 걸어 학교에 갔다. 한 벌뿐인 교복은 일 년이 지나면 몸에 맞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솔기 타진 옷 안에서 웃었다.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 안에 선생님을 모시고 학교를 세웠다. 글을 배워 이름을 쓰고 숫자를 배우면서 셈을 했다. 지도를 펴놓고 세상을 배우고, 산등성의 가시나무와 들꽃의 이름을 배웠다. 아이들은 지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워갔다. 아직도 신기루 같은 소망을 품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이번에는 식량과 점심 샌드위치에 성경책 60권을 선물했다. LA의 한 교회에서 보내준 빨간 표지의 현지어 성경이다. 성경책을 받고 고아원 원장도, 교사도 눈을 떼지 못했다. 몇 년 전 고아원마다 몇 권씩 후원한 성경책은 이미 낡아져 있었다. 몇 페이지는 찢어져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자신만의 새 성경책을 모두 갖게 된 것이다. 고아원 교사조차 생전 처음 자신의 성경책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 각자가 성경책에 자신의 이름을 쓰게 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하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요즘 외우고 있는 암송 성경구절 목록을 보여주었다.

읽고 싶고, 외우고 싶어도 성경책이 없어서 못 했었다. 이제 아이들은 성경을 읽을 것이다. 책도, TV도 없는 고아원에서 어쩌면 교과서 외에 유일한 책인 성경책을 자기 이름으로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성경 읽기는 아이들에게 기쁘고 고마운 시간이 될 것이다.

쌀도 반갑고, 세탁비누도 감사했다. 콩과 옥수수와 스파게티도 마음을 넉넉하게 했다. 게다가 어쩌다 맛보는 샌드위치는 말 그대로 행복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샌드위치를 밀어놓고 성경책을 살피고 있다. 벌써 몇 장을 넘기며 읽는 아이도 있다.

배고프고 목말랐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전혀 깨끗하지 않은 물이지만 트럭에 실려 온 물을 속이 거북해질 때까지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육체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면하곤 했는데, 이제 육체적 필요를 지나고 지적 욕구를 넘어서 영적 성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이 밀려올 때 그 허기를 채워줄 빨간 표지의 새 성경책으로 모두 부자가 되었다.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조항석 목사 /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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