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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네트워크] 김 추기경이 문 대통령에게 남긴 숙제

역사는 단계적으로 발전한다. 국가·정당·종교 등 모든 조직은 역사 발전 단계를 어떻게 밟아나가느냐에 따라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다. 열쇠는 현실주의·이상주의의 적절한 배합에 있다. 오늘의 현실에 몰두하다 보면, 내일이 안 보인다. 내일의 이상에만 집착하다가 오늘 당장 실족할 수도 있다.

오늘과 내일을 단계론적으로 종합한 인물로 단연 김수환 추기경(1922~2009·사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관심은 노동자·도시빈민· 성매매여성·싱글맘·이주노동자·장애인·젊은이·탈북자 등 소외 계층을 향해 그야말로 긍정적인 의미의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했다.

김 추기경은 무엇보다 민주화에 기여했다. 그에게 민주화가 보장하는 각종 권리는 천부인권이었다. 또한 민주화는 가톨릭의 사회사상이나 가톨릭이 수용한 공동선의 개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도 일치했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은 실천하는 신앙을 예시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용문으로 남았다.

그는 1987년 6·10항쟁 당시 명동성당에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지금 이 시각에도 명동성당에서 철야기도를 하는 60명이 넘는 신부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또 그다음에는 수녀님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당신들이 잡아가려는 학생들은 수녀님들 뒤에 있을 겁니다. 경찰들이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제일 먼저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들을 밟고, 그다음에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김 추기경은 좌파·우파 모두에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의 유산은 남북의 화해·평화, 궁극적인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중대한 자산이다. 숙제도 남겼다. 민주화 시대에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김 추기경의 행보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박정희 대통령은 추기경에게 이렇게 말했다. "추기경님, 저는 종교란 마음을 순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정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이러니는 오늘의 태극기 세력이 몇십 년 전과는 달리 정치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70~80년대 상당수 가톨릭 신자들은 김 추기경이 지나치게 정치에 관여하고 있으며 분열을 야기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비판에 김 추기경은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나중에 정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좋은 게 아니었겠느냐고 생각했다. 반면 민주화 이후에는 많은 진보주의자가 김 추기경이 급속도로 보수화된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김 추기경이 남긴 여러 숙제 중 하나는 한미 관계다. 그는 2006년 7월 26일 당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없이 통일할 수 있겠는가? 우리끼리도 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남북관계에서는 할 말을 하고 국민이 볼 때 북한 주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미동맹 살아있어야 하고 미국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순서가 있다고 본 김수환 추기경은 '선대한민국 확립, 선평화, 후통일'을 표방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이 바로 선 뒤라야 통일도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다. 2017년 국제관계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문재인의 가톨릭 신앙이 그의 외교에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 매체들이 문 대통령의 정치적 입장을 '리버럴', '좌편향' 등으로 표현하지만, 문 대통령의 가톨릭 신앙으로 그를 이해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김 추기경으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을 것인가. 김 추기경이 남긴 숙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김환영 /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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