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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단란을 수(繡) 놓는 흐린 날

박계용 / 수필가
박계용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5/23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9/05/22 19:10

언니를 닮았을까 비 오시는 날은 절로 행복해진다. 화초에 달린 빗방울을 오래도록 내다보다 등잔불을 켠다. 다사로운 불빛 아래 펼쳐진 그림 속에는 젊은 여인이 수를 놓고 맞은편 의자엔 어린 여자아이가 앉아 있다. 여인이 수를 놓고 있는 동그란 작은 수틀, 키가 작아 허공에 발이 대롱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마치 데자뷔 현상 같다. 엄마보다 더 엄마 같던 큰언니와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접시의 그림이다. 그림 아래에는 'A good example is the best teacher.'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엄마가 된 딸에게 어머니날 주려던 선물이었지만, 혹시라도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어 별꽃이 하얗게 핀 화분단지만 주었다. 마침 외손자를 데리고 집에 온 딸에게 접시를 보여주며 그 글을 읽어 보라고 하였다.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좋은 본보기는 최고의 스승이라 하였으니, 매사에 조심해서 아기 때부터 잘 키우라는 말만 했다. 그러잖아도 집에 오자마자 봤다며 맘에 든단다. 때 지난 선물을 나중에 가져간다기에 오가며 그림을 들여다본다.

이 그림은 어쩌면 무의식에 간직한 안식처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글 읽으시는 소리. 책을 읽다 등잔불에 머리를 그을리던 그 옛날의 따스한 아랫목, 외아들 뒷바라지에 많은 날 부재중이던 어머니이기에 수를 놓는 큰언니의 모습이 더욱더 그리운 정경인가 보다.

붉은 장미와 벌레 먹은 푸른 잎사귀까지 섬세하게 수를 놓았던 언니의 유품은 장미향이 감도는 착각이 인다. 사랑은 어쩌다 생색내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 시절부터 안온하게 감싸주는 보금자리가 아닐지. 태중의 아기도 엄마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기억을 한다니 사랑은 영혼의 양식이다. '집은 벽과 들보로 만들어지고, 가정은 사랑과 꿈으로 지어진다'는 익명의 귀한 말씀이 창호 문에 어리던 등잔불의 그림자마냥 포근하다.

먼 곳에서 전해 온 슬픈 소식을 듣는다. 내전과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 집과 가정을 잃은 이들의 소식이 참담하다. 그래도 여러 국제단체와 '국경없는의사회' 등 이들을 돌보는 아름다운 사랑이 있기에 희망의 노래는 그치지 않는다. 사랑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진행형일 때 모두가 행복하다. 고아가 되어 떠도는 아이들을 생사를 넘나들며 봉사하는 벗, 그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위험에서 돌보아 주시라고 기도한다.

종일 흐린 날에 시인의 마음 되어 나도 수를 놓는다.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繡)를 놓고/ 심지 돋우고 이마를 맞대면은/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가는 듯 둘렀다." -이영도 '단란'. 세상 어디에서든 모든 이들이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평화롭기를 한 땀 한 땀 고운 색실로 수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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