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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518번 버스와 228번 버스

전라남도 광주에 와 있다. 5·18 기념재단이 주최하는 '2019 광주 아시아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는데 때맞추어 제 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과 그 전날의 전야제 퍼레이드에도 참석할 수가 있었다. 숱한 생명이 무참히 살상되고 행방불명된 참상은 국가적인 비극이었지만 그 일로 방송국에서 해직되고 이듬해 이민을 떠났으니 내 개인사로도 엄청난 사건의 현장이다.

9년 만에 복직을 해서 1989년 봄에 찾았던 이래 두 번째 방문이다. 대대로 역사 밖으로 따돌림받아 노여움이 배어있는 땅, 저의 나라 군병들이 미친 듯 달려들어 숱한 아들 딸들을 빼앗아 간 슬픔의 땅, 그것도 모자라 포악한 무리들이 자식 잃은 지어미들을 향해 갖은 모욕과 망언을 뱉어내는 배반의 땅.

묘지 참배만이 아니라 그날 항쟁의 역사를 간직한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과 기념문화센터, 옛 전남도청, 금남로 등을 샅샅이 들러 보는 동안, 산 자는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부끄럽고 무력해 진다. 대통령도 오죽 답답했으면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고서야 5·18을 어떻게 다르게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는데 금남로 곳곳에는 '오월을 평화로, 우리 민족의 일은 우리 민족의 힘으로' 같은 진취적이고 고무적인 구호들 사이로 '황교안 물러가라' ' 자유한국당 해체하라' 같은 날선 정치적 구호도 넘쳐났다.

광주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의지 없이 불쑥 얼굴을 내밀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분열의 정치를 해서 다른 이득을 보겠다는 의사 표시다. 분열주의자들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냉혹했다. 황교안 대표가 광주에 다녀 간 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는 올라가고 자유한국당은 그 반대가 되었다. 자업자득이다. 하루빨리 조사위원회 구성에 협조해 치유와 통합의 손을 잡아야 한다.



마침 이번 '광주 아시아포럼'의 주제는 '학살 난민-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책임'이었다.적어도 아시아인들에게 광주는 단순히 한국의 광주가 아니었다. 그들은 광주가 어떻게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했으며 이를 전후한 국가폭력과 국가의 보호책임은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국에서 일어나는 독재권력과 로힝야 난민 사태 등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해외에서 5·18 정신 확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미주에서의 5·18 정신 함양은 한인 동포가 가장 많이 밀집해 사는 로스앤젤레스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로스앤젤레스는 과거 민족의 수난기마다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 그리고 통일운동의 전초지가 되어 온 자랑스런 역사성이 있다. 그러기에 동포사회는 물론 주류사회 속으로 5·18 정신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이민과 난민 문제에서도 현지 국가의 보호 책임은 어떻게 주장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논의하였다.

광주에서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낀 점은 연대의 힘이다. 전라도는 이제 전라도만으로 살 수 없고 한국은 한국의 힘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라도 말에 '항꾸네(함께) 묵어야 맛나고 항꾸네 놀아야 오지제, 혼자 뭔 재미로 살아?'라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가 지금 광주에는 1960년 2월 28일 대구학생의거를 기억하는 228번 버스가 달리고 있고, 대구에는 5·18을 뜻하는 518번 버스가 달리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 호남과 영남에 이어 남과 북도 어서 '항꾸네' 살아야 한다.


김용현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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