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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쉽게 쓰여진 글

고성순 / 수필가
고성순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5/23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05/22 20:40

봄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누구나 그러하거늘 나만 혼자 이 황홀한 계절을 마음에 담아두고 만끽한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꽃들은 피어 온 누리를 장식하고, 흥에 겨운 새들의 울음소리는 아름답다. 햇살로 환해진 길을 걸으면 선한 마음과 축복 받은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창가에 놓인 화분에 사랑초 가득하고, 연분홍 꽃술은 흔들거리며 파르르 떤다. 지나가는 봄바람은 피어있는 이 꽃 저 꽃 골고루 어루만진다. 개나리꽃을 슬쩍 건드려 보았다. 움찔하면서 내 손길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들 앞에 서면 자꾸 위축된다. 곱게 서 있는 튤립을 달항아리 같다고 표현하고 나니 쑥스럽다.

정신 사나운 굿판을 본 듯 가슴 한쪽이 쓰라리다. 벚꽃도 활짝 피고, 한 눈 파는 사이에 꽃비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차피 꽃은 피고 지는 것. 혼란스러운 우주의 법칙이다. 촉촉한 가랑비에 기분이 좋아져 고스란히 얼굴로 비를 맞이하였다.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회교도의 한 신비주의자가 예수의 행적을 글로 남겨놓았다. 예수와 제자들은 지옥 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마을과 천국 못 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마을을 그냥 지나친다. 세 번째 마을은 가난한 농부들이 사는 곳이었는데, 춤을 추며 웃고 떠들며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는 기쁨에 찬 소리로 외쳤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길래 우리처럼 천박한 인간들에게 이처럼 넘치는 풍년을 허락하셨나이까?" 그때서야 예수는 짐을 풀고 그들과 같이 어울려 식사를 하였다고 말한다. 그랬을 것이다. 하늘만 쳐다보면 죄책감에 사로잡혀 가보지도 못한 천국이나 불타오르는 지옥이나 생각하면서 살라고 우리를 창조하셨을 리가 없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길 기대해 본다.

날씨조차 갈팡질팡 한다. 무엇이라도 걸치고 나서면 더워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반소매를 입고 나가면 찬바람에 움찔한다. 쉬운 것이 없다.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져 간다. 생각 없이 뽑아준 위정자의 말 한마디에 우리 민족의 미래가 휘청거린다. 세계 경제가 휘청거린다. 물가가 오르는 것은 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별로 산 것 없이 지갑이 가벼워진다. 이곳 저곳에서 사고가 터진다. 혐오범죄가 부쩍 늘었다. 내란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아이들과 여인들이 죽어간다. 종교의 허울을 쓰고 살육을 자행하는 사악한 무리들이 판을 친다.

이렇게 세상이 어려운데 난 쉽게 글이 써진다. 윤동주 시인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무력한 자신을 아프게 보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도 몹시 부끄럽다.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깊은 통찰력 없이 고통스런 이웃이야기를 강 건너 불 보듯 글로 옮기니 창피하다. 쉽게 쓰여진 글, 낯이 뜨겁다. 어지러운 세상. 무기력함을 느끼는 내 자신 나약함 때문이다.

봄비가 속살거린다. 나의 가벼움과 게으름을 떨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물질이 주는 풍족감과 안일함에 나태해진 마음을 추스르자. 시인 워즈워스처럼 무지개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 뛰는 삶을 살자. 보이지 않는 벽을 깨부수기 위하여 백경 모비딕의 등에 작살을 꽂는 에이해브 선장처럼 영웅은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따스한 말과 포근한 글로 이 거친 세상을 보듬는 사랑을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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