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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호의 시사분석] 1995년 시카고의 여름

1995년이었다. 필자가 처음 시카고에 방문했던 해. 당시에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시카고에 이민오신 이모의 초청으로 ‘바람의 도시’에 오게 됐다. 대학교 방학 직후였으니 6월말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미국을 온다는 것이 참 번거로운 일이었다. 특히 병역을 마치지 않은 경우라면 절차가 복잡했다. 반드시 귀국한다는 의미로 보증인을 확보해야 했고 광화문 앞 미국 대사관 앞에서 긴 줄을 서며 방문비자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런 절차를 거쳐 여름방학을 맞아 시카고에 처음 왔다. 20년이 훌쩍 넘은 아주 먼 과거지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당시 만났던 친인척들이 한결같이 했던 인사다. 처음 만나는 경우도 많았지만 나를 지칭하며 ‘한국에서 폭염을 몰고 온 총각’으로 소개됐다.

그도 그럴 것이 1995년 시카고의 여름은 연일 10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던 시기였다. 그래도 처음 시카고를 찾았으니 관광 코스대로 움직였다. 필드뮤지엄에 가서 티라노사우러스 공룡 화석 ‘수’를 처음 접했고 쉐드 수족관에서 현란한 돌고래 쇼도 봤다. 브룩필드 동물원에서 더위에 지친 하마도 구경했다. 다운타운 시어스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시원하게 뚫린 중서부 풍경을 내려다 보기도 했다. 지금은 없어진 미시간 길의 패밀리 레스토랑 배니건스에서 미국 햄버거도 맛봤던 때다.

다운타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차에서 내릴 때마다 턱턱 막히던 뜨거운 공기.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반바지에 카라가 없는 옷을 입고 도심을 활보하는 사람들. 모자에 선글라스, 물에 적신 수건으로 더위를 이겨보려는 시민들. 모든 것이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보통 호변 나무 아래에만 들어가면 선선히 부는 바람에 습도는 높지 않았지만 이때만큼은 습도로 인해 불쾌지수도 꽤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나고 보니 1995년 시카고의 여름은 무려 739명의 더위 관련 사망자가 발생했던 해로 기록됐다. 그리고 사망자는 대부분 시카고 남부와 서부에 집중돼 있었다. 더위 사망자는 대부분 혼자 살고 있었거나 가난했으며 에어 컨디션이 작동하고 있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이들 중에는 창문을 열고 싶어도 험악한 치안 문제 때문에 열지 못했다. 폭염으로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었고 정전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고 계단을 올라가다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일과를 마치고 찬 물로 목욕을 하다 숨진 사례도 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더위 관련 사망을 분석해보면 지역적으로 큰 차이를 보였고 그 차이는 경제사회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보고서가 후에 나오기도 했다.

올해 시카고에는 1월말 혹한과 함께 7월 중순 폭염이 찾아왔다. 기후변화가 몰고 온 전인류적인 재앙인지 가끔씩 반복되곤 하는 특이한 날씨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면 이럴 때마다 가장 높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이 이 사회에서 도움이 손길이 제일 먼저 닿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일 게다. 아무리 정부 차원에서 쿨링 센터를 운영하고 노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한다손 치더라도 주위 사람들을 한번씩 챙겨보는 것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체감기온이 100도가 넘을 것이라는 금요일 오전 일기예보를 보면서 1995년의 시카고 여름을 떠올려 본다. [객원기자]


박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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