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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소풍

신호철
신호철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8/19 15:45

어린 시절, 소풍 가는 전날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던 기억이 많다.

비가 오지는 않을까? 날씨가 너무 덥지는 않을까? 친구들과 어울려 놀 생각에 마냥 즐거워,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아침을 맞을 때가 많았다. 어머니는 벌써 내게 주실 김밥을 만드시느라 분주하시다. 노란 단무지, 시금치, 당근, 계란말이, 소세지는 벌써 식탁 위에 잘 준비돼 있었고, 김 위에 밥을 잘 펼치고 준비된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리고 말아 김밥을 썰고 계셨다. "일찍 일어났구나" 하시며 김밥을 입에 넣어 주셨다(그 기가 막힌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친구들과 나눠 먹어라" 하시며 이층 찬합에 가득 김밥을 싸 주셨다.

우리반에는 고아원에 있는 친구들이 몇명 있었다. 아이들은 방과후 그들을 피해다녔다. 그들은 괜한 일에 트집을 잡아 싸움을 걸어오기도 하고, 하굣길에 동전을 빼앗기도 했기에 아이들은 먼길을 돌아 집으로 가곤 하였다. 그들 중 동호라는 한 친구는 내게 늘 호의적이었고, 늘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도 그 친구가 싫지 않았다. 점심시간이면 내 도시락과 급식으로 받은 동호의 옥수수빵을 바꿔먹을 정도로 우리는 친해졌다.

소풍날 나는 동호와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나눠먹었다. 사이다도 반씩 나눠 마셨고, 밤과자도, 사탕도 반씩 나눠 가졌다.

점심 후 배꼽을 잡고 웃을만한 장기자랑도 있었고, 반 대항 노래자랑도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들의 관심은 보물찿기였다. 아이들은 나무숲을 뒤지고, 나무위 가지사이를 휘졌기도 하였다. 돌멩이를 들어보기도 하고, 친구의 소풍가방 밑을 유심히 살피기도 하였다. 모두들 분주하게 보물찿기에 여념이 없는데, 맞은편 언덕에 동호가 양손에 하얀 쪽지 두 장을 흔들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가 건네는 보물 중 48색 왕자표 크레파스를 선택했고 동호는 하얀 운동화를 가졌다. 동호는 그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 대회에서 입상을 했고, 나는 사생대회에 나가 그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 대상을 받아 조회 때 함께 단상에 올라가 전교생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됬는데 동호는 보이지 않았다. 고아원 친구말에 결핵이 심해져 지방보건소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 후로 동호는 힉교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48색 크레파스가 거의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 다음 해도, 또 그 다음 해에도 영영 동호는 우리 곁을 그렇게 떠나갔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에 이런 시어가 가슴에 쿵 다가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세상 / 소풍 끝나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 말 하리라. (시카고 문인회장)

그리움 이야

그리움은
저만치
가을을 가르고
창문 앞에 서 있다
이제는
그리워야 할 시간
잘려나간
나무가지 사이
내려 앉은 밤
슬퍼하지 말지니
뒤 돌아 서도
뒤 돌아 보게 되는
나를 위해
울지 말지니
가을이야
그건,
그리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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