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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칼럼]바나나와 미국

[애틀랜타 중앙일보] 발행 2019/08/20 미주판 14면 기사입력 2019/08/19 16:24

“바나나는 길다. 긴 것은 기차”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동요가 있다. 바나나가 길쭉하게 생긴 과일의 대명사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인류가 바나나를 재배한 역사도 바나나가 길이만큼이나 꽤 길다. 바나나가 우리에게 그만큼 친숙하다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바나나가 우리 한국인에게 친숙해진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열대에서나 자라는 작물이었기에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먼 거리로 수송하기 어려웠고 장기간 보관하기 어려워서 우리나라에 전달되기는 그다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만큼 예전엔 열대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과일이었다. 보관 방법이 발달한 덕분에 지금은 대부분 나라에서 누구나 즐겨 먹는 바나나의 역사가 궁금하다.

바나나는 동남아가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이미 1만년 전에 바나나를 재배한 증거가 있다고 한다. 주로 말레이반도에서 많이 재배되었으며, 동남아에서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에 퍼지게 된 것은 역사 시대 이전의 일이다. 처음에는 열매에 씨가 많아 주로 줄기에 있는 전분을 채취하기 위해 재배했지만, 나중에 열매를 위해 재배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나나가 중동지방을 통해 유럽에 소개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기원 4세기경이라고 한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과는 반대로 바나나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의 항로를 개척한 이후에 아메리카에 소개되었다.

우리는 흔히 바나나 나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 바나나는 풀의 한 종류이다. 잔디와 마찬가지로 다 자라서 열매를 채취한 바나나 줄기는 베어 버려서 그 자리에서 올라온 줄기를 다시 키우기도 한다.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긴 파초라는 식물이 있는데, 매우 흡사하긴 하지만 열매를 생산하는 데는 파초가 거의 제 역할을 못 하므로 파초는 화초용으로만 키운다. 파초와 바나나 모두 같은 조상을 두었겠지만, 지금은 두 종류의 다른 식물로 인류와 친숙해져 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바나나 열매는 먹기 좋은 과육으로만 이루어 풍성하게 한 입으로 덥석 물어 먹을 수 있지만, 원래의 바나나는 열매는 콩만 한 크기의 씨앗 여러 개가 꽉 차서 과육이 별로 많지 않고 먹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씨앗이 없는 돌연변이 종류의 바나나가 생겨났으며, 이후로는 인류는 이 종류의 바나나만 재배하기 시작했다. 원래의 바나나에 결함이 생겨서 나타난 변종이지만, 이것이 오히려 인간에게 유리한 혜택을 주는 꼴이 되었으며 인류의 힘으로 더 잘 살아남는 결과가 되었다. 사람의 힘에 기대어 더 쉽게 살아남으려고 꾀를 낸 바나나의 술책(?)일지도 모를 일이다.

좌우간, 씨앗이 없는데 어떻게 번식하는가? 바나나는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고, 감자처럼 뿌리를 여러 개로 쪼개서 여러 포기로 나누어 심으면서 번식시킨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의 장점이 될지는 몰라도 또 다른 하나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 단점이란 병충해에 약하다는 것이다. 씨앗으로 번식하지 못하는 식물은 뿌리나 가지를 잘라 심어 번식하므로 유전자에 변화가 생기지 않고 번식한다. 그런데 유전자에 변화가 없는 생물은 세균과 해충에게는 좋은 타깃이 된다. 유전자에 변화가 없으면 방어체계가 노출되어 세균과 해충이 방어체계를 방어체계를 쉽게 허물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끔 바나나가 멸종할 것이라는 뉴스가 떠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씨앗이 있는 바나나 종류들을 서로 교배 시켜 가며 다른 종류의 바나나를 만들어 내고 있어서 그나마 우리는 바나나를 계속 먹을 수 있다.

바나나의 소비 과정도 흥미롭다. 바나나 생산지에서는 노랗게 익은 바나나를 수확해 먹을 수 있겠지만, 생산지에 멀리 떨어진 곳에 수입되는 바나나는 운송 과정에서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파란 것을 수확한다. 상인들은 소비지에서 약품의 도움을 받아서 노랗게 익힌 다음 시장에 내놓는다. 껍질이 노랗고 속의 과육이 하얗기 때문에 백인의 생활 문화에 젖은 동양인을 빗대어 말할 때 바나나라고 부른다. 껍질이 푸를 때 먹는 특별한 종류의 바나나도 있는데 이를 Plantain(플랜틴)이라고 부른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많이 소비되며 생것으로 먹지 않고 쪄서 먹는 특징이 있다.

서양인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 소개된 바나나는 주로 플랜테이션 사업을 하는 대기업의 사업 품목이었다. 특히 미국의 대부호들이 바나나 플랜테이션 사업을 크게 하여 바나나의 대량생산을 이루어냈다. 그 과정에서 바나나 플랜테이션의 땅인 중 남미 각국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받기도 했다. 이유는 현지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점이었다. 그 중의 가장 두드러진 회사가 유나이티드 프루트(United Fruit)라는 회사이다. 또한 ‘Banana Republic’이라는 용어도 탄생했다. ‘바나나 리퍼블릭’이란 미국 대기업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중 남아메리카의 작은 나라들을 말하는데,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같은 나라를 일컫는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생산된 바나나가 한 해에 30억 달러이상의 돈을 들여 500만톤 이상 미국으로 수입되어 소비되고 있다. 매일 무심코 먹는 바나나에도 이런 역사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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