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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편의 언어, 나의 언어

이현숙 / 수필가
이현숙 / 수필가 

[LA중앙일보] 발행 2019/08/20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9/08/19 20:00

말은 잘 통하나요? 남편이 스페인계 히스패닉이라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일상생활은 별 지장이 없지만, 깊이 있는 대화는 좀 불편하다는 게 내가 하는 답이다. '어' 한마디에 '척'하고 저절로 알아듣는 모국어가 아니기에 실수를 많이 한다. 이해가 안 될 때면 못들은 척 외면하기도 하고, 때론 알아들은 척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얼렁뚱땅 넘기려는 나에게 남편은 'In one ear and out the other(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라며 잔소리를 한다. 속으로 뜨끔하다.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다. 나는 거절했다. 이유는 언어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보다는 말이 통하는 친구가 필요한 법인데 나는 그 상대가 되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남편은 문제없다며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사랑한다는 말로 밀어붙였다. 나는 그와 처지가 다르다. 영화를 보거나 코미디 쇼에 가서는 남이 웃으면 눈치껏 따라 웃기에 항상 3초가 느리다. 뒷북을 치는 셈이다. 적절한 몇 초를 놓치기에 자연스레 긴장하게 되고 신경을 곤두세운다. 나는 문장을 직역하기에 미국인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조크(농담)나 속담이 섞이면 오해가 발생해 그와 말다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결혼 직후였다. 서울에서 언니들이 다니러 와서 라스베이거스에 갔었다. 카지노에서 용 그림이 그려진 기계에서 교대로 보너스가 나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신났다. 마침 바로 옆의 게임기가 비어 있기에 나는 기대하며 얼른 앉았다. 힐끔힐끔 그들을 보며 버튼을 신중하게 눌렀다. 보너스라는 글자 두 개가 나란히 멈추고, 세 번째 것도 줄을 맞추려는 듯하다가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다.

아, 아까워라. 내 속을 모르는지 남편은 뒤에서 느긋하게 "Close but no cigar"라고 했다. 뭔 시가. 담배도 안 피우면서. 둘러보아도 내 주위에 시가는커녕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그는 거의 보너스가 터질 뻔했는데 아니어서 안타깝다는 뜻이란다. 옛날 축제에서는 게임에 대한 상으로 시가를 주는데 아슬아슬하게 놓쳐 받지 못했을 때 사용하던 말이라고 했다.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그 안에 국민성과 문화 그리고 역사를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 삶의 절반을 다른 공간에 살다가 만난 그와 나. 나는 남편과 티격태격 싸움을 하며 미국의 속담을 하나씩 배운다. 가끔 적절하게 사용하고 나면 내가 대견스럽다. 그들의 문화 속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뜻을 새겨보면 한국과 비슷한 것도 많지만, 표현 방법이 다르기에 역시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언어는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살다 보니 익혀지는 과정이라 한다. 남편의 말에 뾰로통하며 삐치지 말고 귀 기울여 들으련다. 요즘 나도 서울 방문을 계획하며 남편에게 한국어를 한마디씩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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