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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강자와 약자

김동주 / 수필가
김동주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08/20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9/08/19 21:33

햇빛이 들기 전 베란다의 어린 생명들에게 생명수를 먹여 주어야겠다. 지난 밤 이곳에서는 전쟁이 있었나 보다. 결코 작지 않은 베란다는 흙과 상처 난 상추로 전쟁터를 연상하게 한다. 상추가 잘 자라서 쌈을 싸기 딱 좋은 시기인데 상추뿐만 아니라 흙까지 엎어놓았다. 며칠 전에는 토마토가 익은 것과 익지도 않은 것을 구별도 없이 전부 반쯤 먹고 버린 처참한 뜰을 보며 올해는 유별나게 이들이 더욱 공격적이라 뒤뜰을 나 자신이 엎어버리고 싶은 포기 한 상태다.

얼마 전 배와 복숭아를 다 끝을 냈으니 이제부터 상추 차례인가 보다. 이들과의 싸움에서는 항상 내가 지는 편이다. 내가 불평하는 젖은 땅과 일조량의 부족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몇 해 전에 배나무는 위로 옮겨 심었다. 그 때부터 봄이면 꽃이 예쁘게 피어 뜰을 아름답게 해 주고 여름이 되면 더디어 수백 개 이상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을이 되면 많이 달렸던 배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빈 나무만 서 있는 것을 보면 여간 섭섭하지 않았다.

오래 전 다섯 살이던 외사촌 오빠는 키가 닿는 곳의 종이봉지를 몰래 열고 배를 한 입씩 먹고 다시 봉지로 싸놓았다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는 엄마에게서 많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은 아직도 익지 않은 과일을 사람이 따 먹을 리는 없고 증거는 없지만 다람쥐의 소행이 틀림없다. 지난 해에는 옆집 안토니의 의견대로 일찍이 종이봉지로 싸 주었고 14×14피트 크기의 네트로 나무 전체를 덮어 주고는 안심을 했다. 그 후로 창문으로 보면 네트 안의 수백 개의 배는 항상 그대로 달려서 나날이 굵어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내가 이겼다고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주말에 집에 온 아이들이 하는 말이 누구인가 우리 배를 먹고 있단다. 개미가 줄줄이 나무를 올라가서 아예 배 안에 집을 짖고 까맣게 덮고 있는 것을 내 눈이 시원치 않아서 멀리서 보고 없어지지 않은 것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기는 놈 위에 날아다니는 놈이 있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배 하나 먹겠다고 또 개미와 전쟁을 시작하지 말고 네트까지 다 포기하기로 했다. 나무에 달려 있을 때는 다 먹음직하고 보기 좋게 보였는데 막상 따고 보니 안에 개미 집을 짓고 거의 다 파 먹었다. 성한 것 몇 개 가려서 친구 집에 보냈더니 암으로 고생하고 있는 친구 남편이 보기보다 맛은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위안을 받았다.

전문가에 의하면 봄에 꽃이나 어린 열매를 사정없이 따 주어야 한단다. 나는 꽃과 열매를 다 가지기를 원했던 결과였다. 훌륭한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독일의 마틴 슐레케인의 말에 의하면 척박한 땅에서 수백 년을 천천히 자란 가문비나무로 만든 바이올린이 공명이 아름다운 울림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긴 세월을 두고 자신에게 필요 없는 부분을 알아서 쳐낸다고 한다. 사람 역시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가질 수는 없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꽃만 즐기기로 했더니 수백 개 열렸던 배가 며칠 사이에 다 없어졌다. 옆집 안토니의 복숭아도 말할 필요 없이 모두가 그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봄마다 아름다운 꽃만 즐기고 과일은 그들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제는 그들과 싸우고 싶지 않다. 그들도 일년에 한번씩 얼마나 이때를 기다렸을까? 과일 나무들은 처음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고 그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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