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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악은 악을 만든다

나는 매일 질문하며 산다. 나는 누구인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인가. 욕망의 탈을 쓴 짐승인가. 인간이 되고 싶은 짐승인가. 천박한 탐욕과 남루한 지식을 우아하게 포장해서 파는 사기꾼인가. 탐욕의 사닥다리에 매달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신세인가. 옛사랑의 추억으로 오동나무에 걸려 퍼득이는 나방이가 되었는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바라며 누구를 위해 이리도 허둥대며 살고 있는가.

영국의 대표적 소설가이자 시인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된 선과 악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존경을 받으며 명예롭게 살던 지킬박사는 인간의 본성을 선과 악으로 분리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지킬 박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선행을 베푼 유명한 의사지만 무미건조한 학문 생활에 지겨움을 느끼고 향락의 유혹에 빠진다. 지킬박사가 자신이 만든 약물을 들이키면 악마적 본성이 ‘망토를 껴입듯이’ 지킬 박사의 몸을 에드워드 하이드의 몸으로 바꾼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102쪽에서 ‘지킬로 사는 쪽을 선택한다면 나는 오랫동안 숨겼지만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욕구를 포기하며 살아야 했다. 하이드로 산다면 지킬이 쌓아올린 명예와 이익을 포기하고 사람들의 경멸을 감내하며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라고 작가는 적고 있다. 지속적인 악행을 저지르며 결국 지킬박사는 하이드가 돼 사람을 죽이고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악은 또다른 악을 만든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자주 반복하면 악은 선을 삼키고 종국에는 악과 선의 구별이 없어져 자멸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을 오가며 산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다룬 작품이다.

잘 살고 싶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자랑스런 딸이 되려 노력했다. 사랑도 했다. 비오는 날 키스도 했다. 첫사랑과 무릎까지 닿는 눈길을 어깨만 부딪히며 하루종일 걸었다. 우리는 순결해야 했다.



열심히 돈도 벌었다. 부자가 되면 아버지가 남긴 토지를 빼앗고 마을에서 우리를 쫒아낸 삼촌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다. 아! 그리고 노력했다. 무시 안 당하고 차별 받지 않으려고 알파벳을 죽자 사자 익혔다. 타국살이가 힘들어도 티 내지 않았다. 불평과 눈물은 실패한 자의 변명이므로 성공한 이민자로 기억되고 싶었다. 내 속에 있는 악과 싸우며 선이 주는 달콤한 칭찬과 환호에 눈과 귀가 멀었다.

‘슬픔이 나를 깨운다./ 벌써!/ 매일 새벽 나를 깨우러 오는 슬픔은/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슬픔은 분명 과로하고 있다./ 소리 없이 나를 흔들고, 깨어나는 나를 지켜보는 슬픔은/ (중략) 슬픔은 책을 펼쳐주고, 전화를 받아주고, 세숫물을 데워준다./ 그리고 조심스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나는 슬픔이 해주는 밥을 먹고 싶지 않다.’ 황인숙의 ‘슬픔이 나를 깨운다’를 읊조리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본래 내 모습 그대로 살기로 한다, 떠나간 사람 잊고, 미운 사람 지우고, 사랑했던 추억은 그냥 흘려 보내고, 내 속에 존재하는 나쁜 나를 용서하고, 악과 거짓으로 진수성찬 차려먹는 인간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열불나도 참고 견디며, ‘행복’이라 적힌 손수건으로 콧물 눈물 닦고, 존재하는 것들 속에 그냥 어울려 살 생각을 한다.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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