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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느 권사님의 사부곡

오래전에 신문에서 '사부곡(思夫曲)'에 대한 기사를 읽고 놀란 적이 있었다. 조선조 명종과 선조 때 살았던 이응태씨 묘 이장 과정에서 미라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내가 남편을 그리며 쓴 사부곡이 416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마음을 편지 형식으로 써서 죽은 남편의 품에 넣어 준 만사(輓詞)였다.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머리털과 짚으로 만든 짚신 한 켤레도 함께 있었다.

공개된 편지 내용은 구구절절 애절했다. 세상에 이런 부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부부애가 유별났다. 아내가 읊은 사랑가는 단장을 에는 비가였다.

며칠 전에 나와 친한 권사님이 전화를 걸어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권사님은 유명을 달리한 남편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입학했는데 갑자기 병이 생겨 수술을 받고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어 휴학했다고 한다. 나이 37세가 돼서야 권사님과 결혼하게 됐고 39세에 UCLA 치과대학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권사님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혹의 나이에 치과 공부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UCLA 치과대 학장을 비롯해 교수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등으로 졸업해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한다. 남편은 졸업식 날 4개의 상장을 받았는데 4번째 상장을 받을 때 교수들이 모두 일어섰다고 한다. '세계치과협회상'이었다. 이 상은 치과 의사에게는 최고로 영예로운 상이라고 한다.



남편은 졸업 후 치과병원을 개업해 10여 년을 운영하다가 갑자기 췌장암이 걸려 진단받고 7주 만에 별세했다고 한다. 권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얘기하면서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프다고 했다.

남편이 학업 중일 때 뒷바라지를 얼마나 훌륭하게 해냈는지 학교에 소문이 자자했다. 치과대학 학장을 위시해 교직원 일동이 권사님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남편을 보필하며 학업을 마칠 때까지 눈물겨운 내조를 한 공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벽에 걸어 둔 상장을 들고 와서 처음으로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팔십 평생을 살면서 그런 상장은 처음 보았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칭찬을 하기 위해 상장에 인용된 영어 형용사만도 24개에 이른다.

권사님은 남편을 여의고 가슴에 묻은 지 어언 9년이 지났는데도 9년을 하루 같이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대판 사부곡이다. 이응태씨 아내의 사부곡이나 권사님의 사부곡은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들의 통곡이라 생각해 본다. 자랑스럽고 훌륭한 권사님이 주 안에서 늘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김수영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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