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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잃은 것과 버린 것의 차이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가슴 아프다. 일이 벌어지면 당황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두 달 전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에서 이틀째 되는 날 스마트시계 충전기를 잃어 버렸다. 아마도 전날 알베르게에서 어두운 새벽에 짐을 꾸리다가 빠트리고 온 것 같다. 마라톤 연습용 스마트시계는 인공위성으로 GPS신호를 받아 이동 거리, 속도, 칼로리 소모량, 맥박수 등 많은 생체 정보를 알려주고 휴대폰에 저장도 가능한 만능 시계다.

단점은 배터리를 운동시 매일 휴대폰처럼 충전해야 하고, 그냥 시계로 쓰면 일주일은 간다. 첫날 4만2000보, 8시간 동안 2600칼로리 소모했다고 시계가 알려준다. 배낭 무게 포함하면 3500칼로리가 넘을지 모른다.

이젠 충전기가 없으니 시계는 무용지물이다. 매일 운동하며 보는 시계를 사용할 수 없으니 갑갑하고 허전하다. 일주일 후에 묵을 곳으로 아마존을 통해 주문을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은 버텨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없으면 안될 것 같은데 큰 불편 없이 적응되어 간다. 실제로 카미노 길을 걷는데 그렇게 수많은 정보가 필요 없다. 많은 정보들은 더 피곤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줄곧 시계와 셀폰을 보고 걸었는데 시계가 없으니 이제는 그림자가 보인다. 밤에 보는 것이 아닌 낮에 그림자가 보인다. 동이 트고 나면 그림자가 내 앞으로 길게 드리워진다.

내가 동쪽 프랑스 땅에서 포르투갈, 대서양 바다 방향으로 서쪽을 향해 걸으니까 오전엔 항상 등 뒤에서 태양이 비춘다. 내 몸이 해시계가 되어 내 키 정도로 줄어들면 10시 반 정도, 발 밑에 그림자가 밟힐 정도되면 1시쯤이다. 그러면 점심을 먹거나,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내 진행 방향에서 그림자가 오른쪽 45도에 있으면 남서쪽으로, 왼쪽에 있으면 북서쪽으로 가는 중이다. 매일 매일의 그림자가 나의 생명 DNA *텔로미어처럼 길이가 점점 줄어 들고 해가 지면 새날이 다시 시작된다. 매일 새로 태어나듯이.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곳에 관심까지 두다니…. 예전에 혜민 스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내게는 그림자가 보이고, 내 생명의 DNA 길이가 매일 새로운 날이 보이는 것 같아서 충전기를 잘 잃어버린 것 같다.

이참에 휴대폰까지 잃어 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없으면 안될 것 같아도 또 어떤 새로운 것이 보이려는지 궁금하다. 아니다, 사진도 찍고 비행기 예약도 하려면 휴대폰은 아니다. 스페인에서 혼자 여행하는데 잃어 버리면 큰일난다. 그냥 버리는 것은 내 의지로 버리는 것이고, 잃어버리는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버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잃어 버리니 더 좋은 것도 있다. 혹시, 그분이 가지고 가셨을까?

*텔로미어:DNA 양쪽 끝부분으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노화가 진행 될수록 짧아진다.


배원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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