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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이루어지니 꿈이다

이영주 / 수필가
이영주 / 수필가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2/15 미주판 15면 기사입력 2020/02/14 17:35

내게도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두 개의 꿈이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꿈: 대학교 입시 면접 때였다. 신문학과에 지원한 내게 한 면접관이 “기자가 될 사람이 영어 점수가 왜 이리 낮아?”하며 내 성적표를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당당하게 “저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과 과장 교수님을 비롯한 면접관들은 기막혀하며, 재미있어도 하며, 뜻 모를 폭소를 터뜨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망상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곧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되리라 확신했다.

두 번째 꿈: 2001년으로 무대가 훌러덩 넘어간다. 그해 아카데미상에서 중국의 이안 감독이 미국과 합작해서 만든 영화 ‘와호장룡’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안 감독을 위시해서 출연 배우 진이 아카데미상 위대한 무대를 화려한 중국 복식으로 휩쓰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내 눈은 한복을 입은 우리 한국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환호작약하는 모습으로 투영돼 보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의 비밀스러운 꿈이었다.

이루어지니까 꿈인 것이다. 나는 비록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모래알같이 작은 존재지만, 내가 과거에 꿈꿨던 꿈들이 하나는 반세기 넘어, 하나는 20년 만에 이루어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지금 온 세계의 젊은이들은 한국어 가사로 BTS의 노래를 떼창한다. BTS가 부르는 한국어 가사를 토를 달아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도 공부하기 시작하고, 한국의 먹거리까지 찾아다니며 먹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한식의 세계 홍보에 정부까지 나서서 열을 올렸어도 이루지 못한 대업을 ‘기생충’ 영화 한 편이 세계인들에게 짜파구리를 먹고 싶은 음식 0순위로 매김 해 주었으니 말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아마도 아카데미상 자신이 가장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영화상 역사에 있을 수 없던 일들이 한순간에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당당하면서도 젠틀한 매너와 위트 넘치는 달변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더 자랑스러웠다. 남성적으로 섹시한 목소리로, 사자 머리처럼 풍성한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면서 웃음 띤 얼굴로 그냥 일상사인 것처럼 조곤조곤 수상 소감을 말할 때는 ‘페인 앤 글로리’를 만든 페드로 알모도바르보다 훨씬 매력적이었다. 감독상 수상 후 “영화 공부할 때 읽었던 책에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구절이었는데,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책이었다”라면서 스콜세지 감독을 가리켰을 땐 그 클라이맥스였다. 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일어나 두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이루어졌다.

문화가 주는 선물은 이렇게 차원이 다르다. 지금 한국은 K팝이나 영화는 물론 K드라마, 클래식 음악, 패션 그리고 미슐랭 별을 단 뉴욕의 한식당들까지 그 영향력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쓰나미처럼 팽창하고 있다. 6·25 전쟁 후 개발도상국이었던 가난한 내 나라가 내 살아생전에 이렇게 국력이 성장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한국인이어서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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