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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목의 글] 기림비 건립의 높은 뜻

한 인간의 삶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그의 죽음이 아쉽고 안타까워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밤잠을 설친다면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주에 갑작스러운 서거로 우리를 놀라게 한 윤석원(천주교 세례명 요아킴)님을 추모하며 몇가지 그에 관한 일을 나누고 싶다.

2007년 7월 30일에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이 연방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하기 전인 7월 초에 그는 연방하원 지역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공동발의안에 서명할 것을 촉구하며 다녔다. 때로는 문전박대 당하고 만나주지 않아도 끝까지 버티며 설득했다.

결의안이 통과 되고 몇년이 지나서 동부에서 일본군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지자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LA에도 기림비를 설립하려는 목적으로 가주한미포럼을 창립했다. 2013년 글렌데일에 소녀상을 건립하기 몇 달 전까지 가주한미포럼은 대표는 없고 실무위원만 있는 단체였다. 그가 당연히 맡을 자리이지만 그는 동등한 이사로 봉사하자며 고사했다. 나중에 소녀상 건립이 다가오며 언론에 단체가 자주 언급 되자 이사 중 한 명이 회장도 없는 단체라면 남들이 이상하게 본다고 설득하여 대표직 호칭을 수락했다.

그는 글렌데일 소녀상 이전에 기림비 건립을 위해 200여 곳의 대학교나 지자체에 메일을 보내어 기림비 건립 의사를 타진했다. 몇 곳에서 연락 와서 만나고 진척되다가도 일본정부의 방해로 무산 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절대 포기란 없었다.



글렌데일 도서관에서 결의안 통과 5주년 행사를 한 이후 소녀상 건립까지 다소 지지부진한 진행과정을 타개하기 위해 글렌데일 시장과 시의원의 한국방문을 추진하여 동행했다. 그후 상황이 급진전하여 2013년 7월 30일에 소녀상 제막식을 하게 되었다. 당일에 참석했던 한 언론인은 20년 넘는 기자 생활 중에 한인 관련 일로 이렇게 많은 주류언론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라고 내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소녀상을 건립하며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이 있는데 타지에서 오신 분들에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개하는 얘기가 있다. 글렌데일 소녀상 석판에는 맨밑에 날짜만 새기고 설립 단체 이름이 없다.

당시 글렌데일 시장이 윤 대표에게 왜 단체이름을 넣지 않느냐고 묻자 이 기림비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포함된 미국시민들이 성금을 내어 만든 것이고 이제는 글렌데일시의 재산이니 잘 보전해 달라는 게 그의 답변이었다.

소녀상 건립 이후에 여러 단체에서 상을 주겠다는 걸 모두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회사일과 태평양은행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소녀상을 세우면서 무리를 하셨나보다. 풀러턴에 소녀상 하나만 더 세우고 좀 쉬시겠다고 했는데 식도암이 발견되었다.

윤석원 요아킴님이 우리 곁을 떠나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마음 깊이 기도한다.


황근 / 육군학사장교 남가주동문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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