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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인가] 코로나와 ‘선글라스 연주’

“선글라스를 낀 채로 무대에 나온 그는 곧장 피아노 앞으로 가서 청중에게 짧은 인사만 한 후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를 끝내고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재빨리 인사를 하고 들어가 버렸고 아무리 박수를 쳐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한 청중이 SNS에 남긴 글이다. 이 무대의 피아니스트는 유자 왕(33). 지난 21일(현지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유자 왕은 베이징 태생의 피아니스트고, 전 세계에서 특히 유럽과 북미에서 가장 출연료가 비싼 연주자 중 하나다. 그가 10여년 전부터 각광을 받은 이유는 자신만만한 연주 스타일 덕분이다. 날렵하고 정확하며 거침없다. 화려하고 어려운 곡에서 한 치의 오차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연주자다.

독특한 패션 덕분이기도 하다. 짧은 치마, 딱 붙는 옷, 뾰족하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곡예 하듯 건반을 훑어내린다. 무용수 어머니, 타악기 연주자 아버지를 둔 유자 왕은 중국에서 15세에 미국 필라델피아로 유학 온 후 세계 음악계의 스타가 됐다. 이날 밴쿠버 연주가 끝나고는 비난이 쏟아졌다. “패션으로 관심받기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드디어 선글라스까지 쓰고 피아노를 쳤다”든지 “재능을 듣기 위해 전석을 매진시킨 객석이 실망했다”는 식이었다.

유자 왕은 곧 자신의 SNS에 해명 글을 올렸다. “21일 공연을 몇 시간 남기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고, 한 시간 넘게 강도 높은 질문을 받으며 굴욕과 분노를 느꼈다. 울고 난 후라 내 눈은 충혈되고 부어있었다.”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중국 태생인 유자 왕에 대한 조사가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트라우마로 공연을 취소할 생각도 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서라도 진행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여론은 다시 나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연주를 한 것이 대단하다” 혹은 “코로나19 공포가 엄습했으니 타당한 입국 절차였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20년 넘게 뉴욕에 살고 있고, 중국보다 서양에서 더 많은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의 출신지가 중국이었다는 사실이 확실히 각인됐다는 것이다.

유자 왕은 서양, 그 중에서도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같은 러시아의 음악을 영리하게 해석하는 피아니스트다. 또 미국 워싱턴의 케네디센터가 매년 여는 헌정 공연에서 연주했던, 세계 음악계의 ‘내부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상황에서 그는 서양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중국인일 뿐이다.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세계인)’이라는 예술계의 오래된 환상이자 목표가 바이러스라는 체에 걸러져 조각나는 것을 보여준 일화다.


김호정 / 한국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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