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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곤란의 때를 건너자

매화의 개화 소식이 들려오지만, 올해의 꽃소식은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겪고 있는 고통과 걱정과 혼란에 묻힌 느낌이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강물이 멀리 나아가는 것을 보듯이 이 시간의 흘러감을 조금은 담담하게 바라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매화의 경우를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혹독한 추위가 지나면 매화꽃은 피어난다. 이 흐름은 크게 바뀐 적이 없다.

박재삼 시인은 시 ‘강물에서’를 통해 가만하게 아지랑이가 솟아 아득해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눈물의 때를 보냈던 옛 시간을 회고하고, 또 그 곤란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지금 맞이하게 된 봄의 돌아옴을 “물오른 풀잎처럼/ 새삼 느끼는 보람”이라고 표현했다.

혹독한 추위의 지속을 매화가 오래 감내하듯이 곤경을 맞고 있는 우리도 멀리 바라보아서 조급하고 불안한 당장의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겠다. 물론 지금 겪게 된 고통의 원인을 바로 보아서 대처하고 처방해야 함은 물론이다.

언젠가 읽었던, 독일의 작가 안톤 슈나크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생각난다. 슈나크의 문장은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 외에도 비 내리는 잿빛 밤,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 갈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쓰신 한 통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을 때, 거만한 인간을 만났을 때, 숲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털을 보았을 때도 슬픔을 느끼게 된다고 썼다.



그런데 법정 스님이 1965년 12월에 쓴 글을 최근에 다시 읽다가 스님이 안톤 슈나크의 문장을 언급한 대목을 접하게 되었다. 스님은 이렇게 언급했다. “지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안톤 슈나크의 보랏빛 슬픔이 아니다” 꽤 단호한 문장이었다. 스님은 이렇게 생각한 연유를 밝혔다. “우리가 부딪히고 있는 현실은 감미로운 저녁노을을 훨씬 지나, 한밤의 칠흑 같은 어둠인 것이다. (……) ‘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와 무연한 일이 아니다. 너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와 ‘너’로 분화되기 이전에 ‘우리’인 것이다. 오늘 우리가 서식하는 세계를 에누리 없이 말한다면, 그것은 하신(下信)과 암흑의 계절이다.”

스님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의 원인을 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찾고 있었다. 1965년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것을 하신, 그리고 칠흑과도 같은 시대 상황이라고 보았다. 하신은 무엇일까. 서로에 대한 믿음의 높이가 낮은 것을 이르는 것일 테다. 더불어 사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 연대와 공생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을 일컫는 것일 테다. 그렇다면, 법정 스님의 이 지적은 곤란과 고통에 직면한 이 시대의 우리들도 돌아보아야 할 내용이 아닐까 한다.

혹한의 시기를 참고 견디되, 다른 사람의 고통을 살피고 다른 사람을 구난(救難)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구난의 내용은 무엇일까. 나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듯이 다른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구난이요, 아무도 해치지 않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것이 구난이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그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 구난이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것도 구난일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말도 있다. 노자의 이 말은 무슨 일이든 작은 생선을 굽듯이 하라는 뜻이다. 살이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에는 자꾸 앞뒤로 뒤적거리지 말고 기다려야 하듯이 어떤 일이든 참고 조심스럽게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억지로 하지 말라는, 무위(無爲)의 가르침인 이 말은 내 고집대로, 내 신념만 믿고 일을 밀어붙이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작은 생선 굽듯이 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 보다 크고 견고한 믿음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리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모든 매화나무는 혹한의 시기를 지나온 매화나무다. 지금 꽃을 피우고 있는 모든 매화나무의 보람은 고통을 지나왔기 때문에 더 큰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살피면서 이 곤란의 때를 건너가야겠다.


문태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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