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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악의 꽃

길은 텅 비었습니다. 아침부터 창밖에 시선을 간간이주었지만, 강아지를 끌고 나온 이웃집 알렌이 지나가는 것을 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뿐, 어둠이 내려앉는 뉴저지 파라무스 동네 길은 하루 종일 적막이 가득합니다.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편지를 써봅니다. 스산한 고독, 정적의 깊은 여운이 뼛속까지 아리게 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연상으로 떠오르네요. 홀로 커피를 마시는 스산한 식탁, 홀로 작은 오피스에 앉자 창밖을 내다보는 청년, 홀로, 분리된, 그래요, 우린 선택하지 않은 홀로, 소외된 사람이 되어버렸네요.

금줄을 두른 듯한 집들은 말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니 불들이 하나둘씩 켜지는데 왠지 따뜻해지네요, 그렇지요. 모두 홀로, 섬이 되어 저기 가깝고도 먼 다른 섬이 그립지만 숨죽이고 이 괴이한 시간을 통과하는 거죠…. 내게 내일이란 언제나 알 수 없는 기대로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듯조심스러운희망의 떨림이었었죠, 이렇게 선택하지 않은 시간의 격리 속에 유폐되어 제동이 걸리리라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요. 당황스럽다고요. 네, 저도요, 처음 늙어봐 낯설다는 심보르스카의 시인의 말이 떠오르는 이 당황, 정말 처음 당해보는 일리라 낯설고 두렵네요. 화가 난다고요, 그렇죠,

어제는 뉴욕 호스피탈 정신병동에서 일하는 의사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어요. 마스크가 역부족이라네요. 입원실이 부족하여 복도의 간이침대에 짐짝처럼 누워 있는 환자들, 이 열악한 의료시스템 앞에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무기력해지네요. 카뮈의 ‘페스트’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벌레 같은 인간은 세상에 언제나 있었다고요. 그렇죠, 모두가 불안한 시기를 악용하여 돈벌이에 굶주린 파렴치한 인간, 분노를 넘어 개탄스럽습니다. 영안실이 부족하여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권리, 죽음의 존엄성마저 상실당한 주검을 바라보며 이 전 세계를 뒤덮은 검은 장막이 신의 경고라고 하셨나요. 글쎄요, 저는 모르지요, 정말 알 수 없지요, 지금은 하느님이 심판 하시는 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무엇이 중요한지 선택해야 할 시간이란 교황의 전 세계 특별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오네요.

그래요. 누구를탓할 것도 없이 제가 죄인입니다. 저는 눈이 멀었었지요. 끝없는 욕망으로 남에게 지지 않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왔습니다. 우쭐거릴 심산으로 텅 빈 속을, 진한 화장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명품의 백을 들고, 뽕 불린 어깨의 코트를 걸치고 거들먹거렸습니다. 내 자식을 잘 기르겠다고 이를 악물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뒤처짐이 있어야 내 자식이 올라간다는 사실에 눈을 차갑게 감았습니다. 왜 인간답게, 나답게, 사는 것보다 잘사는 것에 그리도 치중했을까요. 이 모두, 중심 없이 세상 것에 흔들린 어리석은 제 탓이옵니다. 끝도 없는 탐욕의 바벨탑을 쌓아 더 높이, 올라가는 빌딩을 보며 환호하던 욕망의 추종자,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해봅니다.



그것뿐인가요,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물병이 쓰레기더미에 쌓여 바다로 흘러가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비상을 꿈꾸던 알버트로스의 입에 파편을 집어넣어 피를 흘리게 했죠, 내가 무심코 버린 검은 비닐봉지가 나무에 앉아 펄럭이네요, 넘치고도 넘치는 식탐으로 네발 달린 식탁 빼고 무엇이든 먹어 보겠다던 잡식에 지구를 울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구를 아파 울게 한 나는, 인간은, 지구의 최대의 바이러스였습니다. 뭉크의 절규, 지구는 절규하고 있습니다. 두 손을 모으겠습니다. 무릎으로 기어 모하비 사막을 건너며 참회의 백만 배를 올리겠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고요. 네 그럴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각자의 도생이심각해지겠지만, 이 혼돈의 시기에도 자기 일터에서 꿋꿋이 최선을 다 하는 슈바이처 같은 천사들이 많은 것처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막살고 가지 않고 한 생을 그래도 인간답게 살고 가겠다는 깨어 있는 사람으로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도덕성을 회복하는 소신으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넘어졌다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 더 높이 뛸 수 있는 악에서 활짝 피는 꽃으로….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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