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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코로나 산행길의 풍경

집에만 있으라 하니 답답해서 모두 폭팔 직전인 듯 갈 수 있다는 곳으로 모여든다. 일하는 남편의 휴일이니 산행을 택했다. 평상시엔 산행 동아리와 함께 가는 남편이지만 그룹 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못 간다. 이참에 실력 떨어지는 내가 따라 나섰다.

스키장도 못가는 판에 산에서 눈을 만나고 즐길 수 있음이 행운이다. 차를 주차한 후 화장실을 의무감으로 들렀다. 앞에 세 명이 줄서 있다. 나를 이어 뒤로 네 명이 선다. 큰 볼일인지 시간이 한 참 흐른다. 마침 내 뒤에 선 여자가 앞으로 가더니 똑똑 노크를 한다. 또 한다. 아하, 잠긴 걸 파악한 상황에 길게 섰던 우리 모두는 파안대소하며 헤어졌다.

아침 9시가 지난 시간인데 레드박스 주차장엔 빈 곳이 제법 있다. 집에만 있으라 해서 그러려니 한가한 트레일을 걸었다. 걷다보니 제법 눈 쌓인 곳이 넓어진다.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즐거운 놀이터다. 매머드 스키장까지 안 가고 가까운 산에서 눈밭을 만나 걷고 있음이 행복하다. 행여 미끄러질까 미니 크램폰을 내발에 끼워 준다. 자기는 산행 신발로 요령껏 걸으면 상관없단다.

샌게이브리얼 피크. 왕복 7 마일 쯤 되려나? 억지로 따라 걷는 나 때문에 정상까지 2시간여 걸렸다. 그 사이 만난 사람은 8명. 한가한 셈이다. 간단한 점심시간에 넉넉한 휴식시간을 보내고 오며 가며 만나는 견공들과 대화를 나누고 하산길이다.



시간이 정오를 지나는데 이런 시간에 웬 산행하는 사람들이 이리 많을까. 차림새도 간단하게 소매 없는 티셔츠 차림이 우세다. 인사하기 바쁘다. 잠깐 잊었다. 2미터 간격, 견공들 만지기, 코로나19가 무색하게 잊혀진 산행길이다.

주차장에 닿으니 난리, 난리 이런 난리가. 주차하려 빽빽이 기다리는 차들로 걷기조차 어렵다. 시내까지 내려오는 산길 양쪽 가로 빈틈없이 늘어선 차들이 마치 유원지 찾아 온 인파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마주 올라오는 차량의 행렬이 가관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퍼질까 조심하라는 공문이 무색하다. 완전 축제 분위기다. 사람들 얼굴에 환하게 피는 웃음꽃이 내게도 전염된다.

심적으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 같은 위축됨에 나름대로 분출구를 찾는 행렬이다. 내 속이 뻥 뚫린다. 우리 다 같이 이, 말도 안 되는 재난의 시기를 이겨내자. 누구든 마주치면 그냥 환히 웃어주자. 정다운 인사 한마디 아무 기대도 말고 전하자. 2미터 거리는 유지하면서도 포옹이라도 한 듯 상대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힐 수 있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순간 아무생각 없이 낄낄 웃게 된다. 자신이 잘하는 악기나 노래를 집 베란다에서 연주하는 유럽 사람들의 영상에 울컥 감동을 받는다. 내 가족, 내 이웃에게 한 순간이라도 기뻐할 수 있는 뭔가를 건네주자. 곧 끝날 재난임에 확신을 주자.


노기제 / 통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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