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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에어] 재앙에 대비하는 사람들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벌써 8년 전 일인데 사촌보다 가깝게 지내던 A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이사하겠다고 했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하루 이틀이 멀다고 왕래하던 가족이 LA에서 차로 6시간 넘게 떨어진 시골로 간다니 마치 생이별을 하는 것 같았다.

A가족은 살던 집을 처분해 농장 부지를 사서 집을 짓고 과수원을 만들고 가축도 길렀다. 가공식품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니면 굳이 상점을 가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없는 게 없었다. 염소 젖을 짜 우유와 치즈까지 만들어 먹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갈 거라 믿는다.

A가족은 시골행 1년 만에 완벽한 그들만의 요새를 만들었다. A가족이 요새를 만든 건 언젠가 올지도 모를 재앙 때문이다. 지구는 지진, 전염병, 전쟁, 자연재해, 경제 붕괴 등의 위험에 둘러싸여 있고 이런 재앙을 맞게 되면 식량난을 겪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대재앙의 때가 먼 미래이면 좋겠지만 자녀, 혹은 그다음 세대에 겪게 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해 둬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때마다 ‘에이 설마…’하고 넘겨 버렸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행복하게 사는 A가족의 모습이 보기 좋긴 했지만 예전처럼 도시에 살았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었을 거란 생각에 A가족의 결정이 솔직히 내내 못마땅하기도 했다.



미국발 코로나19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게 벌써 한 달이 넘는다. 그 사이 워싱턴주에서 첫 확진 환자가 나왔고 대한항공 확진 승무원이 LA를 거쳐 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LA한인타운이 발칵 뒤집혔다. 집단 감염이 발생한 크루즈선이 들어 온다는 발표에 밤을 새우고 오클랜드 항구에 다녀오기도 했다.

설마 설마 하는 사이 환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LA시와 캘리포니아주는 앞다퉈 자택 대피령을 내렸다. 자택 대피령이 내려진 첫날 베벌리힐스의 모습은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하루 사이 거리는 텅 비고 명품 매장 안 고가품들도 싹 사라졌다. 항상 인파로 북적이던 할리우드 거리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가 어색했는데,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왠지 눈치가 보인다. 전문가들은 캘리포니아주는 17일, 뉴욕은 이번 주를 정점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대학 글로벌보건연구센터는 지금 추세로 보면 17일 사망자가 정점을 이루고 앞으로 3개월 내로 캘리포니아 내 코로나19 사망자가 5000명을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2주가 고비다. 하지만 고비가 잘 넘어갔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 새롭고 무서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없는 한 또다시 확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6월, 7월까지 자택 대피령이 연장될 수도 있다는 예상에 힘이 빠진다. A가족은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A가족의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무는 더 많아지고 가축도 더 늘어났단다. A가족의 결정이 옳았던 걸까? 3주 전 겨우 주문에 성공한 휴지 배달이 자꾸 늦어져 걱정이다.


부소현 JTBC LA특파원·부장 bue.sohyu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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