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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엄마의 사진첩

어젯밤, 무심코 들여다본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 숫자에 깜짝 놀랐다. 전화기를 바꾸며 이동해 온 몇 년 전 사진부터 여기저기 지인들이 보내온 것들. 하늘이 맑다고, 꽃이 예쁘다고, 음식이 마음에 든다고, 어느 날엔 화장이 잘돼 좀 젊어 보인다고 무심히 눌러댔던 순간들로 가득하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순간 소중하다 했던 것들이 내 삶 전체로 갈 수 있을까. 문득 이 또한 불필요한 집착은 아니었을까 하여 지우기로 한다. 꾹꾹, 수도 없이 지워지는 순간의 포착들, 기억의 편린들.

얼마나 같은 작업을 했을까? 눈이 아파 멈추고 보니 그 숫자가 반으로 줄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줄어든 숫자만큼 아쉽고 서운해야 하는데, 그동안 내가 짐처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닌데, 시원하다. 촌스럽든 밉게 나왔든 바꿀 수 없는 어느 날의 추억. 네 살 때 찍은 낡은 흑백사진을 신기하게도 그 장면, 그 언덕, 그 웃음소리와 함께 보물처럼 기억하고 간직하는 나인데, 무언가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다. 이름처럼 스마트하게 핸드폰은 가벼워짐을 알고 더 채워 넣어도 된다고 하겠지만, 이젠 그 ‘채워 넣음’에 진정성을 보태기로 한다.

몇 년 전 오랜만에 한국을 갔을 때의 일이다. 이번에 다녀가면 가까운 시일 내에 오지 못할 것이란 것을 아시는 엄마는 미리 준비를 해두셨던 모양이다. 아흔을 앞에 둔 노모는 내게 노란 봉투 두 개를 내미신다. 꺼내 보니 내 결혼사진,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 또한 나의 어렸을 때 사진들이 들어 있다. 다른 봉투에도 미국에 사는 다른 딸들네 사진들이 담겨 있다.



자식들 결혼사진에, 손주들 돌 사진에, 수없이 들여다보셨을 사진들이 제각각 이름을 찾아 나누어져 있다. “너희들에겐 소중하지만, 엄마 아버지 없으면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냐. 이제 너희들이 가져가서 보거라.” 봉투를 가방에 넣으며 난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더 두고 보세요. 나중에 가져갈게요.” 그러나, 난 말하지 못했다. 40여 년 얼마나 많은 손길이 스쳐 갔을까.

낡은 사진첩을 꺼내보았다. 듬성듬성, 지금처럼 쉽게 사진 찍을 수 없던 시절, 마치 행사처럼 찍혀 우리 가족의 역사가 되어 담겨 있던 사진들이 엄마의 말씀처럼 주인을 찾아간 걸까? 빈자리가 사뭇 시렸다. 좀 더 오랜 시간 그것들의 주인이 엄마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시간이 못내 아쉬웠다.

엄마가 서랍에서 사진 몇장을 꺼내셨다. 내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셔서 기억조차 희미한 내 외조부님들, 엄마의 어머니 아버지 사진들이다. 회갑연 사진과 영정 사진으로 쓰였을 사진.

“이건 내가 태우려고 한다. 내 부모 사진 내게야 소중하지만, 나중엔 이것도 그저 불 속으로 갈 것 아니냐….” “엄마. 이 사진 나 주면 안 돼? 내가 두고 보면 안 돼?” “니가 두고 볼래?”

언젠가는 나도 외조부님을 추억한다기보다는, 평생을 깊숙이 간직하고 홀로 가만가만 꺼내보며, 당신의 부모님을 그리워했을 나의 엄마를 또한 그리워하며, 엄마에게 보내 드리겠지. 빛바랜 사진 속엔 온전한 그리움과 그날의 햇살이 어제처럼 찬란하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낡은 사진첩이 좀 더 여러 날 엄마의 머리맡에 놓여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넘침으로 인해 느끼지 못하는 소중함. 핸드폰 속 사진을 지우며 또한 남기며, 삶도 어쩌면 필요와 불필요 사이에서 너무 많은 생각과 집착에 힘든 것은 아닌가 한다. 나도 언젠가는 듬성듬성 공간을 만들며, 엄마가 그러셨듯 내 보물창고의 사진들을 주인 찾기를 하겠지. 그날 또한 엄마의 낡은 사진첩을 떠올리며, 그날을 추억하겠지.


김채은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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