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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삶은 계란

오래전에 읽은 글입니다. 어느 철학자가 인생이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은 왜 사는가.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요, 내가 죽고 싶어서 죽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 우리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다가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왜 사는지, 나 자신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생각을 하다가 아침을 먹는 걸 잊어버린 채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산과 들을 보면 생각이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청량리역으로 가서 강원도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오래전에는 기차역마다 소녀들이 기차 창문에 서서 “오징어 사세요, 삶은 계란이요”라고 소릴 지르며 물건을 팔았습니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철학자는 소녀의 “삶은 계란이요, 삶은 계란이요”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배가 고프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는 계란을 몇 개 사서 까먹으며 ‘그렇지. 삶은 계란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고매한 철학적인 사고를 한다고 해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국전쟁 때의 일입니다. 우리 집은 대찰리 약간 언덕 위에 있어서 담 넘어 재일중학교 운동장이 훤히 보였습니다. 거기에 서울에서 잡혀 왔다는많은 사람이 계단에 앉기도 하고 운동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학교 뒤뜰에서는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주먹밥을 만들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주먹밥을 손에 들고 먹는데 참 보기에 불쌍했습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그 가운데 춘원 이광수 선생님, 최남선 선생님 등 한국의 지성인들이 모두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고매한 사상과 철학이 그 주먹밥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게 하였을까요.

가만히 지내온 나의 인생을 생각합니다. 철이 들 무렵 14살 때 피난을 왔습니다. 거리에서 신문을 팔면서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를 하면서 내가 경험한 문제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을 먹으면 점심때 무엇을 먹어야 하고, 점심을 먹으면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하고, 이것이 마치 꽁무니에 붙은 불처럼 우리를 뛰게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건방지게 잘 이해도 못 하면서 칸트를 읽고 데카르트를 좀 읽어보고 쇼펜하우어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간의 학문보다는 철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는 도덕 선생님의 초라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근무하시던 평양기독병원의 의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목에 청진기를 걸고 병원 구내를 걸어 다니면 하얀 간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공손히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들 사택에서 사는 의사들은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잘 사는 사람들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철학을 버리고 의학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먹고 살려고 그리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칸트의 이성을 생각하고 카뮈의 부조리를 생각하고 볼트만의 신학을 사색한 일이 거의 없습니다. 나도 철학 교수처럼 삶은 계란이다, 인생은 먹고 사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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