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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고추장을 담다

평생 처음 고추장을 담갔다. 고추장을 담근 것은 고추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사할 때 보니 4년 전에 서울서 가져온 고춧가루가 김치냉장고에 많이 남아 있길래 그걸 막내네로 가져와서 궁여지책으로 고추장을 담게 된 것이다.

나는 보리고추장을 담그기로 했다. 고춧가루가 묵은 것인 데다가 그냥 굵게 빻은 것이라 찌개용으로나 써야 할 것 같아서였다.

우선 찰보리 1kg을 하루 저녁 물에 담갔다. 다음 날, 5인용 전기밥솥이라 보리밥을 한 솥하고 나머지 보리는 푹 삶았다. 그렇게 익힌 보리를 뉴저지서 가져온 메줏가루와 엿기름 물에 36시간 삭혔다. 그 후,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버무렸다. 고춧가루가 고운 게 아니라서 체에 밭쳐 굵은 것은 따로 후드 프로세서에 갈았다. 아주 곱진 않지만, 버무려보니 표가 나지 않는다. 물에 소금과 설탕을 넣어 끓여 식혀서 버무리라기에 소금만 양대로 넣고 설탕은 한 컵만 넣었다. 버무리고 맛을 보니 간도 싱겁고 너무 맛이 안 난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막내 냉장고에 있던 메이플 시럽 한 통을 다 부어 넣고 소금도 보충해줬다. 보리가 알이 다 풀어지지 않은 것도 있는데, 나중에 다 삭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유튜브에서 말하기에 그것도 그냥 넘어갔다. 궁한 대로, 내가 하기 쉬운 대로, 그냥 버무렸다. 나중에 맛을 본 막내가 맛있다고 하고, 첫째도 항아리에 옮겨 담으면서 맛보더니 괜찮다면서 신기해한다.

처음 미국 와서 제일 아쉬운 것이 장이었다. ‘음식 맛은 장맛이다’라고 할 정도로, 우리 식생활에서 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장맛 좋은 집은 음식도 맛있다. 맛을 중시하는 내게 식품점에서 파는 장들은 성에 차지 않았다. 사흘만 된장을 안 먹으면 우울해지는 내게 된장이 떨어지면 그것은 위기상황이다. 찌개를 끓이면 텁텁한 고추장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래서 해마다 친정어머니께서 된장, 고추장을 보내주셨다. 손맛 좋기로 집안에서 첫 손꼽히는 엄마의 장맛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90세 되시던 해, 서울 간 내게, “엄마의 장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이제 더는 힘들어서 못 하겠다.” 선언하셨다.



그 후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턴 된장이 맛있는 도예가 김기철 선생 댁에서 해마다 고추장까지 얻어오고, 박완서 선생 돌아가신 후엔 큰따님 원숙 씨가 챙겨준다.

고추장의 역사를 찾아보다가 (조선 왕 중에 영조가 특히 좋아했다는) 고추장이 16세기 이후 등장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임진왜란 때 고추가 일본에서 건너오면서 고추장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있었다는 된장의 역사와 비견된다. 우리 된장이 일본 된장 미소보다 항암 효과가 크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된장이나 고추장 모두 콩 발효식품이므로 공통으로 항암 효과가 뛰어나며 피부 건강에 좋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뼈 건강, 뇌건강, 소화 촉진, 당뇨 예방, 여성 질환 예방에 좋다니 만병통치약이다. 특히 고추장은 지방, 단백질, 비타민C, 비타민B2 등 유익한 영양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시력에도 좋단다.

입맛 돋우고 몸에 좋다는 고추장을 항아리에 담고 보니 그저 뿌듯하다. 작년에 서울서 가져온 된장이 떨어지면 그땐 된장도 담가볼 생각이다. 장 담그는 일이 해보니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아마도 곧 막내네 뒷마당에 장독대가 만들어질 것 같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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