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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사색] 모든 질문에는 답이 있다

인간이 살다 보면 무수한 질문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선과 악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자신은 선하게 살고, 양심적으로 사는데 왜 그리하는 일마다 안 되고 힘든 삶을 사는가, 반대로 어째서 악한 자는 잘 되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악한 모습으로 사는 자는 무한한 수직상승을 하고, 정직하게 사는 자는 끝없는 추락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질문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두 번은 하는 내용일 것이다. 주변을 보면, 사실 나쁘게 행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나고, 더 잘살고, 더 잘되는 일들이 많음을 느낀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하나님은 계시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악이 이렇게 성행하는 데도 침묵만 하고 계시는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신의 유무, 나아가 신이 존재한다면 살아있는 신인가 아니면, 죽은 신인가 하는 의심까지 하게 된다.

주전 2세기 철학자 에피큐러스는 신은 존재한다고 했지만, 그 신이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을 좌우하는 그런 신은 아니라고 했다.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라 하여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이 인간을 선하다고 복주거나 악하다고 저주하는 그런 신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반면 악한 사람이 잘사는 것을 보면 신이 인간 삶을 좌우하는 그런 일과는 무관한 존재라 한 것이다.

신에 대해 더 심하게 평가한 철학자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다. 그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했다. 인간 삶에서 도덕의 상실현상을 신이 죽은 것으로 말한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 의해 현실적인 삶에서의 어려움을 피하는 대신,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의 평안을 구하는 그런 삶의 자세를 비판하느라 그렇게 말 한 것이다.



좀 더 삶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말하자면, 니체의 주장은 세상에 악이 횡행하는 일에 신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신의 무용성, 나아가 신은 죽었다고 말 한 것이다. 세상이 거짓과 권모술수로 인간은 죽어 나가고, 부정부패, 인면수심의 행태가 자행되고 있어도 신이 있다면 그런 자들을 벌하고, 정직하게 살고, 선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상황으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그런 주장을 한 것이다. 그래서 죽었다고 생각되는 신에 의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인간존재와 그 능력을 활성화 시켜 살라는 뜻이다.

그런 인간사고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은 계시고, 계시되 확실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이며, 동시에 역사를 주관하시며 운행하는 하나님임을 가르치고 있다. 존재 여부에 대해서 시편 14장 1절과 53편 1절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한다”라는 말로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반증 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또 하나님의 인간역사운행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13장 24-26절이 설명한다. 즉 어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어느 사이 가라지(잡초)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이를 본 하인이 주인에게 “당장 뽑아버릴까요?”라고 묻자, 주인 대답이 “가만두어라.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 가라지 잡초는 베어서 불태우고, 알곡은 창고에 들이도록 하라”는 비유가 있다. 악이 함께 성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거나 무능해서가 아님과 악을 심판하려다 선인도 다칠 가능성이 있어 최후 심판의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성을알려주고 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은 확실히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있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심판은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악이 횡행한다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하나님의 역사 개입의 무관성을 주장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악은 철저히 심판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13편 1-6절에서의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아무리 신은 죽었다고 니체처럼 주장을 한다 해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답은 늘 보고 듣고 살게 된다.



장석민 목사 / 빛과 사랑교회 담임, 언더우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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