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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전] 얼음

정철 / 카피라이터
정철 /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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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8/03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20/08/02 16:21

겨울이 만들고 여름이 사용한다. 오늘 내가 시간을 쏟아 만들어내는 것의 가치를 오늘이 몰라줄 수도 있다.

‘사람 사전’은 얼음을 이렇게 풀었다. 그런데 얼음만 그럴까. 오늘이라는 녀석은 누군가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에 늘 인색하다. 사람에겐 더욱 가혹하다.

자, 나는 서른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나를 만들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름 모를 수많은 꼰대가 나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지만 나는 결국 내 작품이다. 화려하든 초라하든 내 작품이다. 그런데 오늘 이 녀석은 30년 공들인 나를 힐끔 보고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는다. 번듯한 일자리 하나 주지 않는다.

조바심이 난다. 나는 끌과 톱을 동원해 나를 깎고 다듬는다. 오늘이 원하는 모습으로, 표정으로 나를 바꾼다. 열심히 바꾼다. 기껏 바꿨는데 바꾸는 동안 오늘이 원하는 모습과 표정은 저만치 도망가 버린다. 어이쿠. 또 바꿔야 한다. 더 바꿔야 한다. 바꾼다. 도망간다. 쫓아간다. 도망간다. 쫓고 쫓기는 사이 원래 나는 조금씩 사라진다. 내 30년이 열심히 사라진다. 그러나 아쉽지 않다. 아깝지 않다. 내가 사라져야 내가 산다. 나는 내가 사라지는 순간마다 나에게 박수를 친다.

그런데 다시 어이쿠. 겨우 나를 다 버렸는데 오늘이 무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원래 당신이 가장 나은 것 같네요. 그때 그 당신을 다시 찾아오세요. 끌과 톱을 내려놓고 원래 나를 떠올린다. 생각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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