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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망했다, 망했어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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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8/03 미주판 10면 기사입력 2020/08/02 16:22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리지만 절망감을 보이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최근에 이 표현은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의 청년이 자주 쓰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더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일 겁니다. 취직도 어렵고, 집을 사는 것도 어렵고, 사는 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 생이 망했다고 하는 사람에게 충고나 위로도 쉽지 않습니다. 받아들이려는 마음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은 주로 타인이나 다른 세대와의 비교에서 나옵니다. ‘다른 세대는 취직이 잘 되는 시기에 태어났는데, 우리는 왜 이럴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라고 하는 비교를 합니다. ‘금수저라는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데 나는 왜 이럴까?’ 하는 허탈감도 있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 세대가 취직 등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코로나 시대라는 점이 이런 암울한 기분을 키웠을 겁니다.

‘망(亡)’은 ‘망하다’는 의미 외에도 ‘도망(逃亡)가다’나 ‘죽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근본적인 의미는 죽음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끝나는 것이 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망하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망을 ‘사망(死亡)’이라고 합니다.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미망(未亡)’이라고 하는데 아시다시피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은 남편이 죽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의미로 차별적 어휘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죽지 않은 게 잘못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굳이 미망인이라는 말을 쓴다면 같은 발음의 ’미망인(未忘人)으로 한자를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미망(未忘)은 도저히 잊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잊지 못한다는 의미의 미망인은 아내를 잃은 남편에게도 함께 쓰면 어떨까 합니다. 배우자를 잃는 것은 따라가고 싶은 만큼 슬픈 일이겠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먼저 간 사람을 도저히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요즘에는 ‘폭망’이라는 신조어도 나왔습니다. 완전히 망했다는 절망감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폭식(爆食), 폭발(爆發)의 느낌을 망에 더한 것입니다. 폭발의 느낌을 생각해 본다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번 생은 폭망이야.’라고 말하는 모습이 때로는 장난스럽게도 느껴지지만, 아무래도 씁쓸합니다.

저는 망과 관련된 어휘를 보면서 망이 죽음을 의미한다면, 도망가지 말고 부딪쳐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망할 때까지는 망한 게 아닙니다. 망이 그대로 끝도 아닙니다. 더 내려 갈 곳이 없다면 올라갈 일만 남아있지 않은가요? 인생은 때로 단막극처럼 보이지만 연속극인 경우도 있습니다. 1편에서 어려움을 겪던 주인공이 멋지게 2편에서 부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드라마보다 실제 생활은 훨씬 더 많습니다. 멋지지 않더라도 만족하며 편하게 사는 인생도 좋은 결말입니다.

인생은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 괴로움이나 힘든 일이 가득해 보여도 그래도 끝내 남아있는 희망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자의 망이 서로 다른 글자이지만 발음이 같은 것은 위로를 줍니다. 힘들더라도 망했다고 하지 말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힘든 세상에서 이만큼 살고 있는 우리가 대견한 건 아닌가요? 망(亡)을 망(望)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충고라기보다는 그냥 이렇게라도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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