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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지금 여행이 그립다

최인철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최인철 /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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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08/03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20/08/02 16:24

코로나 기간 그리운 건 여행
낯선 곳에서 자신 발견 경험
움츠린 감각 소생시킬 기회

여행이 그립다. 일상이 지겨워서만은 아니다. 역마살이 낀 탓도 아니다. 이국적 음식이야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큼은 즐길 수 있으니 그것도 이유는 아니다. 도대체 이다지도 여행이 그리운 건 왜일까?

절대다수의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버킷리스트.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0%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버킷리스트는 산티아고 순례길, 타지마할, 그랜드 캐니언, 고비 사막 등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다는 그 간절한 것들 속에,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뎌내게 해주는 희망 리스트 속에, 왜 이국으로의 여행이 1순위일까?

인간이 천성적으로 인류학자여서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DNA 속에 있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여행 산업이 만들어낸 허상에 우리가 세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행복을 위한 최고 수단이라는 어느 행복심리학자의 주장에 설득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리라. 여행은 관광이 아니다. ‘수동적인 봄(gazing)’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는 자기 발견의 경험이다. 자신을 발견하고 사유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새로운 자기를 잉태한다. 취준생이나 대학원 지원자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글에 여행에 얽힌 이야기를 단골로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우리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선물을 들고 온다. 일상의 시작과 끝이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의해 규정된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은 의미 있는 경험에 의해 규정된다. 여행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자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절차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일상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단조롭다. 시간에 리듬이 없고, 맺고 끊는 맛이 없다. 자연적 시간만 존재할 뿐, 의미의 시간은 멈춰 섰다.

버킷리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단순히 여행 장소만 나열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 가서 어떤 방법으로 즐길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페루의 마추픽추는 꼭 걸어서 구경하라.”

“도쿄에서 초밥을 제대로 즐기려면 츠키지 시장의 노포를 가라.”

여행은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구체성은 그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생계를 위한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 때문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감각들을 망치로 부수듯 깨우는 작업이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지어야 하는 억지웃음과 어색한 추임새들, 그 수많은 감정노동으로 인해 지친 자신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응급치료가 여행이다.

만일 인간에게 자의식이 없다면, 그리고 진정한 자기에 대한 갈망이 없다면, 여행은 결코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여행이란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진정한 자기를 추구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지금 여행이 그리운 건,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 새로운 시작을 제공해주던 의식이 사라지고, 삶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게 해줄 장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여행이 그리운 건, 잔뜩 움츠린 우리의 감각들을 소생시켜줄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표현을 빌자면 ‘운명적 순간(fateful moments)’을 만나거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말대로 ‘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s)’을 발견하는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브레송의 뒤늦은 깨달음이 옳다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했던 모든 운명적 만남과 결정적 순간은 이미 일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국으로의 여행을 갈 수 없는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자세는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것이 아닐까라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두 발로 시내를 걸어보는 것, 하루 세끼를 여행 온 것처럼 계획하고 즐겨보는 것, 하루 정도는 낮부터 포도주에 취한 채 ‘호텔 캘리포니아’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감상하는 것.

아… 아무리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보려 노력해도, 그래도 여행이 그립다. 바이러스의 위협이 사라지자마자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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