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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눈부셨다

용감하고 멋진 분을 만났다. 나는 그녀와 그녀 남편의 허락을 받고 이 글을 쓴다.

그녀는 우리 병원 응급실에 금요일 아침에 걸어 들어와 일요일 밤에 중환자실에서 영면했다. 60세인 그녀는 아이리시계 미국인으로 한눈에 보아도 멋진 팔등신에 월가에서 현직으로 일하고 있던 재정 분석가이며 투자자였다. 평소에 오가닉 음식을 선호했고 운동을 꾸준히 해왔으며 자연을 찾아 산책과 하이킹을 전문적으로 하는 순수 자연인이었다. 늦은 나이 50에 결혼했고 자녀는 없다. 늦게 결혼한 이 부부는 그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나 하듯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정말 신이 이들을 질투한 것일까. 2019년 5월 그녀는 왼쪽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치료법으로 유방절제술과 화학요법을 권했다. 그녀는 유방절제술은 힘이 들어도 감당하겠지만 화학요법은 거부했다. 철저한 자연주의자인 그녀는 화학요법과 같은 독한 물질의 주입을 거절한 것이다. 수술은 대 성공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행운아라고 자축하고 있을 무렵인 7월에 이번에는 유방암이 오른쪽으로 번졌다. 이번에도 의사는 수술과 화학요법의 병행을 권했으나 그녀의 결심은 한결 같았다. 오른쪽 유방절제술이 행해졌다. 여자로서 양쪽 유방을 절제당한 후 상실감과 자괴감은 어땠을까, 우리는 상상만 할 뿐이지 그녀가 겪고 견뎌야하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세계는 그녀만의 몫이었으리라.

수술 후 그런대로 잘 견디며 주말만 되면 이 부부는 길고 짧은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만약 인간에게 정해진 수명이 있다면 그녀에게는 60년의 생만이 주어진 것일까. 그 해 11월에 그녀는 다시 다발성 골수종(multiple myeloma)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항체를 생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형질세포의 암이다.】〉〕 초기에는 무증상이다가 병이 진행되면 뼈가 아프고 출혈이 잦고, 빈혈이 생기며 잦은 감염이 생긴다. 완전 치료법은 없고 스테로이드, 화학요법, 증상치료, 골수이식 등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치료 받지 않으면 7개월,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면 생존기간이 4~5년이고 5년 생존율이 약 49%이다.



그녀는 정말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혈액 암에는 수술이 없다. 다른 요법을 병행한 화학요법만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녀가 그토록 원치 않던 화학요법이 이번에는 제1순위 치료법이다. 그녀는 많은 연구와 공부를 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4~5년 사이 병원과 의사를 방문하며 길고 가늘게 사는 삶 보다 차라리 치료 없이 짧고 굵은 7개월의 삶을 선택했다.

연구 중에 대체의학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Switzerland Paracelsus를 발견하고 예약을 했다. 이 요양원은 스위스 알프스산맥을 뒤 배경으로 지어진 현대식 산장이다. 60년 전에 지어졌으며 대체의학 전공의, 치과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요법 치료사, 영양사들이 함께 상주해 있고 각 개인에 맞는 맞춤형 식단과 치료법을 의사가 처방한다. 의사는 각 환자의 자가 면역능력을 키워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데 초점을 둔다. 3주간의 스위스 방문을 마치고 뉴욕에 돌아오자 코로나로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하며 생을 정리하고 있던 중 지난 달 6월 19일 우리 병원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다. “나는 죽으러 왔다”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자기 삶을 이토록 사랑하고 선택하고 실천한 B! 눈부셨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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