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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밭농사, 아모르 파티

요즘 나의 일과는 마당 곳곳에 있는 작은 밭들을 살펴보는 일로 시작된다. 뒷마당이 제일 돌아볼 밭이 많다. 본채 벽을 두고 만들어진 화단은 리빙룸 쪽의 넓은 라벤더 가든이 주인공인데, 얼마 전 라벤더 밭과 이어진 안방 벽 화단에 야생화 씨를 뿌려주었으므로 새싹을 틔운 그들을 만나보는 게 신바람 나는 일이다.

뒷마당 한쪽 밭에는 참나물과 일당귀가 자라고 계시는 중인데(하도 안 자라나니 계신다고 높여준 것), 신선초가 전멸한 곳에 머스타드 그린과 고추를 심었더니 고추는 아직이지만, 머스타드 그린은 벌써 싹이 나오고 크시는 중이다. 하금숙 씨가 머스타드 그린이 잘 자라고, 스테이크와 먹으면 너무 맛있다고 하길래 심었는데, 정말 잘 큰다.

옆 마당 아루굴라 심었던 밭에도 씨를 뿌렸더니 잘 자라고 있다. 그 옆의 상추는 정말 잘 큰다. 벌써 많이 뜯어 먹었는데도, 아직 숲처럼 짱짱하다. 상추 머리 쪽에 심은 호박 모종 두 개는 첨엔 잘 자라더니 이상하게 병이 들어서 죽어가는 호박이 많아 2개밖에 따먹지 못했고, 이제 한 개가 좀 커졌고, 몇 개가 살아남아 가슴 졸이게 한다. 그 옆 밭엔 깻잎과 일본 시소, 쑥갓, 일본 쑥, 부추, 차이브가 잘 자라고 있다. 라벤더와 타임도 함께.

앞마당은 꽃밭이다. 정원사가 와서 돌봐주고 있어 문제가 없지만, 앞마당 양 날개에 있는 좁고 긴 작은 꽃밭은 내 몫이다. 한쪽엔라벤더와 함께 심은 여러해살이꽃이 물만 주면 잘 자라는데, 선인장을 심은 한쪽은 물을 안 줘서 선인장이 비실비실 남아있던 것을 얼마 전에 내가 타임이며 여러해살이꽃을 나눠다가 심어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옮겨 심은 애들이 잘 자랄까, 걱정이었는데, 물을 열심히 주니 터를 잘 잡고 안착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정원은 아니지만, 집터가 넓으니 마당이 앞마당, 옆 마당, 뒷마당까지 손 볼 곳이 많다. 스프링클러로 물을 줄 수 있게 되어있다면 편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직접 물을 줘야 해서 이 마당, 저 마당 옮겨 다니며 물주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온종일 밭일을 그렇게 하고 났더니 내가 마당에서 걸은 거리가 1.6마일이다. 좋아하던 드라마 볼 시간도 없다.

매일 이렇게 밭농사를 하다 보니 밭농사 안에서 깨우치는 것이 많다. 마치 신화 속의 인간처럼 내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환각 속에 많은 상념이 영화처럼 펼쳐지다가 사라지다가 한다. 신화의 힘으로 유명한 조셉 캠벨은 신화를 잘못 받아들인 인간이 갈등과 분쟁, 자연 파괴의 주범이라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우리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는 회오가 깊다. 신화는 삶의 경험담이기도 하고, 인간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친다는 캠벨의 말에 동감한다. 그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가 믿는 신과 하나 되기라고 말한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완전성과 무한한 힘의 가능성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니체도 “주어진 운명을 긍정하고 그것을 사랑(아모르 파티, 운명에의 사랑)하면서 그 상황을 극복한 인간은 그만큼 더 위대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는 해를 보면서 “아! 아름답다!”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이미 신의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고 캠벨은 말하던데, 매일 손톱이 새까매지도록 밭에서 잡초를 뽑고 밭일을 하면서 신화 속의 나를 꿈꾸기도 하고, 새삼 신을 더욱 경배하고, 신이 가르쳐주는 영적인 원리를 따르는 삶까지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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