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살며 배우며] 가을꽃 소식

“이 꽃 이름이 뭘까요?” 월요 등산대원 카톡방에 한 분이 꽃 사진을 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코로나 때문에 등산을 못 하는 대원들이 카톡방을 통해 많은 정보를 나눈다.
“돼지감자 꽃?” 답 글이 올랐다.
“딩동댕. 맞습니다. 그 댁에서 가져다 심은 돼지감자 꽃입니다.”
“돼지감자 꽃, 와 진짜 반갑습니다. 노랑 꽃잎 보면, 옛날 내가 키우던 돼지감자 생각나고, 보릿고개 배고픈 시절 돼지감자 캐던 일들, 지금 돌아보면 아득한 추억이 감사로 이어지고, 사는 것 아름다워져요. 반갑습니다.” 해바라기를 닮았으나 작고 노란 꽃잎이 코스모스 같은 꽃. 나도 댓글을 달았다.

9월이 되자 돼지감자 꽃을 닮은 노란 꽃들이 맥 다니엘 공원 여기저기에 피어 내 눈길을 끈다. 꽃을 보니 반갑고 기분이 좋아진다. 저 꽃들을 보면 왜 내 기분이 좋아지는지 원인을 걸으면서 찾아보았다. 원인은 돼지감자 꽃과 맺은 옛 경험이었다.

1954년 봄, 보릿고개 배고픈 때, 충북 단양읍에서 고개 둘 넘어 덕산 골 살 때, 냇가 언덕에서 돼지감자를 캐다 먹었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10여호 산골 마을에서 배고프면, 개울가에 가서 야생 돼지감자를 캐왔다. 산돼지가 돼지감자를 좋아해 넓적한 주둥이로 흙을 파헤쳐 돼지감자 씨를 말린다 했지만, 배고픈 내가 먼저 냇가에 가서 돼지감자를 캤다.



작은 돼지감자 몇 개를 집 뒤에 심었다.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 돼지감자 줄기가 내 키를 넘게 자랐다. 가을이 되니 해바라기 닮은 노란 꽃이 피었다. 그때 바라본 돼지감자 꽃, 그것은 약속이었고 격려와 칭찬이었다.

약속은 봄에 보릿고개 때 배를 채울 돼지감자가 우리 집에 넉넉히 있다는 증거였다. 격려와 칭찬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계획하고 내 손으로 실행하여 성공적으로 이루었다는 격려와 칭찬이었다. 네가 나를 캐다가 심었으니 당연히 나는 너의 것이야, 갖고 싶으면 네가 노력해야 해, 그런 웃음을 머금고 꽃들은 살랑살랑 가을바람에 춤추었다.

“이 꽃이 돼지감자 꽃 아닌가요? 우리 다니던 등산 길가에 많이 피어, 사진 올립니다.” 한 분이 노란 야생화 사진을 카톡방에 올렸다.

돼지감자 꽃과 닮은 노란 야생화, 돼지감자 꽃이다, 아니다라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등산대원 중에 두 분이 자신의 정원에서 자라는 돼지감자 꽃 사진을 카톡방에 올렸다.

인터넷에서 가을에 피는 돼지감자 꽃 비슷한 꽃들을 찾아보았다. 나래가막사리(wingstem)라는 생소한 이름의 꽃이 돼지감자 꽃과 혼돈되었다. 돼지감자 꽃은 노란 코스모스라면, 나래가막사리는 꽃 판 가운데가 도토리같이 볼록하고 노란 꽃잎들이 볼록한 가장자리 아래로 쳐졌다. 키가 크고 무성하여 거리를 두고 보면 돼지감자 꽃과 혼돈되다. 도토리같이 볼록한 씨방에서 도깨비 비늘 같은 달라붙는 씨들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삼잎국화라는 꽃이 돼지감자 꽃과 흡사한데, 결정적인 다른 특징은 삼잎국화는 식물 잎사귀가 세 갈래로 갈라졌고 손바닥처럼 크다. 맥 다니엘 공원에서 많이 보는 노란 꽃은 삼잎국화나 나래가막사리였다.

은퇴하고 이곳에 와서 맥 다니엘 공원이 가까워 자주 걸을 때, 돼지감자를 공원에 심었다. 그 돼지감자는 친구분이 정원에서 길러 선물로 준 것이었다. 심은 자리는 공원 갯가 잡초밭이었다. 돼지감자 꽃이 피면 공원 산책 때 오가며 보려고 심었다. 어리고 작던 소나무들이 해마다 쑥쑥 자라, 잡초밭은 총총한 소나무밭이 되고 잡초들도 돼지감자 꽃도 사라졌다.

초가을 아침 선선해진 공원길을 걸으며 삼잎국화나 나래가막사리 꽃들을 보니 반갑다. 그들이 돼지감자 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더 반갑다. 옛날 아름다운 경험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돼지감자 꽃을 보면 나는 행복하다. 그때 허기를 달래주어서 고맙고, 집 뒤에 심은 돼지감자가 잘 자라주어서 고마웠고, 노란 꽃들이 예쁘게 피어서 아름다웠고, 춘궁기에 캐면 쌩쌩해서 신났고, 지금은 그때처럼 배고프지 않아서 행복하고, 추억이 아름다워 행복하다.


김홍영 / 전 오하이오 영스타운 주립대 교수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