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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주판 이야기

오래 전 LA다운타운 차이나타운에 한약재를 사러 간 적이 있다. 물건 값을 치르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60대로 보이는 가게 주인이 큼직한 주판알을 튕겨가며 한참 계산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주판에 눈이 팔린 나는 한참을 넋을 잃고 서 있었다. 잠시 옛 감상에 젖는 순간이기도 했다.

계산의 필요성은 농경시대를 거쳐 생활양식이 복잡해짐에 따라 점차로 늘어갔을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계산 도구는 손과 손가락이었을 것으로 쉽게 짐작이 간다. 손이 계산 수단이었다는 흔적은 고대 이집트의 여러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기껏해야 만 단위 정도의 셈에 그치는 손 계산의 한계는 자연히 다른 계산도구의 출현을 촉진시켰을 것이다. 주판도 이렇게 하여 생겨난 여러 계산 도구 중의 하나인 것이다.

주판은 1950년대의 서울을 떠 올리게 한다. 아직 사무용 계산기가 널리 보급되기 전이다. 현대식 주판(Abacus)은 서기 1200년경에 중국에서 처음 사용됐다고 하는데 윗부분에 2개의 알이 있고 아래에 5개가 있는 2/5식과 그 후에 나타난 1/5식이 있다. 1930년경에 일본에서는 1/4식이 출현하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에서 쓰이던 것은 주로 1/5 또는 1/4식이었다.



1950~1960년대 까지만 해도 주판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계산 도구로 인식되고 있었다. 당시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국가시험을 거쳐 주판 실력의 등급을 매기는 공인 주판 급수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은행이나 공기업 또는 행정 부처에서 주판 유급자(주로 상업 고등학교 출신)를 채용하는 오래된 관행이 있어 왔다.

아직까지도 중국의 오지에서는 주판이 쓰이고 있으며 러시아의 일부 지방에서는 ‘쇼티(Schoty)’라고 불리는 그들만의 독특한 주판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에도 홍콩, 뉴욕, LA 같은 큰 도시의 차이나타운에 가면 주판으로 계산하는 기성세대 상인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불과 몇 초안에 수백억 단위를 소화하는 괴력을 가진 주판 암산법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직후 일본 점령 미군의 컴퓨터 담당관과 일본의 주판 고수의 시합이 있었다.

1945년 11월 두 사람은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5라운드의 계산 시합을 가졌는데 승자는 놀랍게도 주판이었다. 결과는 4:1 압승이었다. 점령군의 체면을 생각해서 한번은 일부러 져주었다는 말까지 돌았다.

내가 서울에 진출해 있던 미국의 회계법인 쿠퍼스 앤드 라이브랜드(Coopers& Lybrand)에 CPA로 참여하고 있을 1960년대만 해도 한국의 일반 기업에는 사무용 계산기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했었다. 그 후 전자계산기의 출현을 시작으로 주판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끝내는 주판 시대의 종언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제 아무리 고수의 칼잡이도 총잡이의 적수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바쁜 외국 생활에 묻혀 까맣게 잊고 지냈다가 우연히 주판을 보게 되니 마음 속에 만감이 일렁거린다. 잃었던 옛 정취를 자극했나 보다. 그 후 얼마 있다가 나는 주판을 하나 구해서 책상 옆에 모셔 놓고 지내는데, 이사 갈 때면 잊지 않고 챙기는 재산 목록에 들어 있다.


라만섭 / 전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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