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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무소식이 희소식

지난달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떠난 영국 사돈네 총각이 멋진 사진을 보냈다. 2주 격리 생활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 그가 본 뉴질랜드 들판은 눈이 시린 천연의 아름다움이다. 바닷가 푸른 초원과 야생 들판은 아일랜드의 들판을, 그리고 삼림이 우거진 숲은 캘리포니아의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연상시켰다. “부러버라 부러버라” 하다가 하얀 페인트칠이 산뜻한 집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세기 훨씬 전, 안사돈이 태어나고 살았던 집을 외삼촌이 준 주소로 찾아갔다는 사돈총각은 그 집 앞을 서성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15년 전인가 일본 여행 중에 나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 우리는 곳곳의 명소를 찾아보고 남편의 고향인 교토에 머물렀다. 세계 2차 대전시 미군도 공습을 피하고 보호해 줬다는 고도는 옛 정취가 물씬하게 잘 보전된 곳이다. 마침 5월의 축제인 ‘아오리마쓰리’가 열리던 중이라 버스를 타고 행사 지로 갔다. 만원으로 뒤뚱거리며 주택가를 지나는 버스 속에서 갑자기 남편이 낯익은 곳이라며 고함을 질렀지만, 버스는 빠르게 지나갔다. 행사장 가까이에서 버스에서 내린 후 우리는 많은 관광객 틈에 끼여서 길게 이어지는 축제행렬을 봤다. 전통복장을 한 일련의 사람들이 천천히 걷거나 말을 타고 지나갈 적마다 딸과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 그룹이 지나가자 우리는 타고 왔던 번호의 버스를 타고 온 길을 되돌아가다가 남편이 기억한 장소에서 내렸다. 2-3 블록을왔다 갔다 하며 헤매던 남편이 드디어 한 골목을 찾아 뛰어갔다. 뜰에 푸른 소나무가 있는 집을 가르키며 “바로 저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살았어” 하자 뒤따르던 딸과 나는 놀라서 말을 잃었다. 60년 훨씬 전에 살았던 집을 찾은 남편도 감정이 벅차서 말을 못했다. 남편은 그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자신은 미국에서 왔는데 오래전에 이 집에서 부모님과 살았다며 잠깐 집안을 봐도 되느냐 물었다가 “No!”라는 퉁명한 답을 들었다. 실망한 남편은 한참을 서성이며 뒤뜰에 있는 소나무에도 아쉬운 눈길을 줬다. 든든히 자리를 지킨 집과 소나무들이 품고 있는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남편의 팔을 딸과 양쪽에서 잡고 그곳을 떠났다.

뉴질랜드 낯선 나라를 방문해서 오래전 어머니가 나서 자란 집을 찾아보고 감동했던 사돈네 총각이나 교토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집의 외관과 뜰의 나무를 보며 세상을 떠난 부모를 그리워한 남편은 대단히 운이 좋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운 대상의 실체를 확인했다.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부모 따라 여러 도시로 이사를 많이 다니며 살았던 집들은 사라졌다. 어느 한 집도 없다. 기억을 더듬어서 여기저기 찾아갔지만, 옛집들이 있었던 장소조차 추측하지 못하게 변해서 이제는 고국에 들러도 고향을 찾지 않고 이방인처럼 떠돌다 돌아온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안정된 후에 생활이 전처럼 자유로우면 만나자고 지인들과 각자 집에 꽁꽁 숨은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어쩌다 문자로 안부를 묻거나 지나가는 바람처럼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고작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고 각자 나름대로 은둔 생활 잘한다고 믿다가 간혹 슬픈 소식이 들려오면 안타깝다. 세상을 떠난 지인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지 못해 미안했고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앓는 지인에 마음 아프지만, 집안의 크고 작은 기쁜 일로 행복한 지인들의 소식에 나도 즐겁다.

하지만 자다가 깨어나 자잘한 걱정으로 뒤척이며 새벽을 맞는 나도 정상은 아니다. 며칠 전 식품점에서 만난 지인에게 직설적으로 비판해준 것도 마음에 가시로 걸렸다. 솔직히 비정상이 정상으로 자리 잡는 혼란에서 시름시름 지쳐가며 신경이 날카로워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컵에 물이 반 밖에 없다’로 치우칠 적이 많다.

잠시라도 전처럼 살고 싶어서 매년 10월 중순에 열리는 Alabama National Fair 축제에 갔다가 빠르게 한 바퀴 돌고 바로 나왔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활개 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구경보다 그들을 피해서 다니느라 피곤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앞으로 가상현실에 적응하며 살아야 할 것에 회의를 가지니 어쩌면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됐나 보다.


영 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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