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Los Angeles

52.0°

2020.11.24(Tue)

[하루를 열며] 추수감사절 소동

이경애 / 수필가
이경애 / 수필가 
  • 글꼴 확대하기
  • 글꼴 축소하기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20/11/21 미주판 11면 기사입력 2020/11/20 17:28

추수감사절이 돌아오지만, 올해는팬데믹의 거침없는 확산이 무서워 식구들이 모이지 말자고 의견을 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추수감사절… 하루가 길고 지루할 것 같다.

지난해만 해도 부엌에서는 터키와 햄 구워지는 냄새가 자욱하고 아이들은 음식이 하나씩 완성되어 식탁 위에 오를 때마다 코를 킁킁대며 모처럼 느긋한 파티를 즐길 기대로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양다리를 얌전하게 모은 기름기 자르르한 뜨거운 터키가 오븐에서 꺼내어졌다. 손주들까지 이제 대식구가 되어 둘러앉아 감사기도를 드리고 기념사진도 찍어둔다. 와인과 곁들여 먹는 터키 고기도 이젠 입에 익숙해져 가고, 추수감사절은 상에 가득한 음식을 먹으며 저녁 늦게까지 온 가족이 유쾌하게 즐기던 명절이었다.

미국에 이민 온 첫해, 나는 학교 ESL 클래스에서 배웠다는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터키를 구워보았다. 발가벗은 터키의 안과 밖에 버터를 고르게 바르고 뱃속에다가는 양파, 마늘, 사과와 배 등 과일을 많이 넣어 구웠다. 겉이 노릇한 갈색으로 구워진 터키는 보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으나 처음 먹어보는 터키 고기는 특유의 냄새와 함께 텁텁한 식감으로 우리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았다.

몇 년 뒤, 한국에서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추수감사절 무렵에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나는 그동안 지인들에게 주워들은 터키 굽는 법의 정보를 모아들고 친구에게 미국에서의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음식을 보여주고 싶어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터키를 오븐에 넣고 다른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오븐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금세 부엌에, 마루까지 연기로 자욱해졌다. 당황한 나는 어찌할 줄 모르고 오븐을 열고 터키를 꺼내려는데 잘 보이지도 않고 뜨거워 잘 꺼내지지도 않는다. 곧이어 아파트의 알람이 요란하게 울리고, 급하게 달려오고 있는 불 자동차 소리에 내 머리는 빙글빙글 돌았다. 나와 식구들은 그저 허둥대기만 할 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정신이 없는데 방화복으로 무장한여러 명의 소방관이 저벅저벅 우리 집으로 들어온다. 나는 이 아파트를 홀랑 태워버릴 죄인이 된 양어찌할 줄 몰라 하며 오븐을 가리켰다. 소방관들은 우선 우리보고 전부 밖에 나가 있으라 해서 우리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번쩍이는 조명등을 돌리며 세 대의 대형 소방차와 앰뷸런스, 여러 대의 경찰차까지 길에 가득했다. 우리 가족은 나와 있는 주민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손님인 친구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단 몇 분 만에 상황을 종료하고 내려왔다. 버터가 뜨거운 오븐 바닥에 흘러내려 일으킨 해프닝이었다. 소방관들은 웃으며 내게 다가와 터키 계속 구워 추수감사절을 즐기라고 하더니 손까지 흔들어주며 철수했다. 한눈에 봐도 미국에 온 지얼마 안 되는 어리바리한 이민자인 것이 보였는지 그들은 우리의 실수를 조금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오늘 추수감사절의 기분을 망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까지 보여주었다. 그 일로 미국은 내게 더 따뜻한 나라로 다가왔고, 더는 이방인이 아닌 내게도 살만한 나라라는 힘과 용기가 마음에 실리게 되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누그러뜨리고 친구를 대접할 요리를 다시 시작했다.

지금도 한국에 사는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올 때마다 그 불자동차 요란하던 추수감사절 얘기를 그가 꼭 꺼내어 서로 웃곤 한다.

오늘의 핫이슈

PlusNews

포토 뉴스

전문가 칼럼전문가 전체보기

HelloKT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