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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인문학을 공부하는 의사들

매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 문인을 존경하고, 그 이들의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의사 문인들의 작품에서는 생명을 다루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진하고 간절한 마음과 손길이 느껴진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서 기쁨과 슬픔, 절망, 좌절, 인간적 한계… 같은 짙은 감정을 경험한 이들이 인생과 생명을 보는 눈길은, 역시 깊이와 무게가 다르다는 느낌이 바로 전해진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마종기 시인이나 이창윤 시인 같은 의사 문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 미주 한인문학을 깊고 넓게 높게 이끌어주는 은혜에 감사한다.

특히 요즘처럼 전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사나 간호사 중 글 쓰는 이들이 생생한 체험을 작품으로 남겨주면 고맙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치료하기도 바쁜 판에 무슨 글이냐는 핀잔을 듣더라도 글로 남겨달라는 부탁을 감히 드리고 싶다.



인류문학 역사를 살펴보면 문학과 의학의 관계가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많은 의사 문인들이 인류 문학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문학과 의학’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마종기 시인의 글을 간추려 인용한다.

먼저, 의학을 공부하고 의업을 계속하면서 좋은 작품을 쓴 문인으로는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 독일 작가 한스 카로사, 미국 작가 거투르드 스타인, 미국 시인 윌리엄 C. 윌리엄스 등이 있다.

한편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업을 접고 문학에 전념한 작가로는 독일 소설가 실러, ‘윌리엄 텔’의 작가 제임스 놀드, 영국 탐정소설가 코난 도일,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 미국에서 활동한 한국 작가 강용흘, 일본 소설가 모리 오가이, 중국 작가 루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유명한 마가렛 미첼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의사 문인들이 훌륭한 작품으로 인류 문학에 기여한 부분도 소중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왜 문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대단히 중요하다. 요즘처럼 의료 제도가 경직되어, 환자가 제대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모로아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의사는 병자를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가가 되어야 하며, 철학가의 지능과 소설가의 재주를 겸비해야 한다.”

꿈같은 이야기다. 온통 ‘흰 가운을 입은 분석 과학자’ 뿐인 세상에 이런 멋쟁이 의사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아졌으면 정말 좋겠다.

병원이라는 곳. 예약을 하고 가도 1시간 정도는 당연히(?)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기다려서 의사 선생님 존안을 우러러 뵙는 것은 겨우 5~10분인데, 그나마 대부분은 기계가 보여주는 각종 수치를 판독하는 시간이다.

긴 말 할 것 없이, 의사이면서 좋은 시를 쓰는 서홍관 시인의 시 ‘3분45초’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오전 진료가 끝났다/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했는데/ 환자들의 아픈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진찰과 처방은 제대로 되었을까?/ 2시간 반 동안 40명을 치료했으니 한 사람당 진료 시간은 무려 3분45초/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이것이 바로, 의사가 문학이나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문학이나 인문학은 결국 사람공부이고, 환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앞서 더 시급한 것은 의료제도의 근본적 개선이겠지만… .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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