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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우리는 한민족

김광일, 우리 골프가게에서 일하는 중국계 동포, 소위 말하는 조선족이다. 손재주 있고,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강한 청년이다. 중국에서 영어교육을 받지 않아 영어는 짧지만 머리가 좋고, 눈치가 뻘라 미국손님들의 말을 대충 알아 듣고, 클럽수리를 잘 한다. 며칠 전 조용한 시간에 그의 패밀리 트리에 대해 물어 봤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1890년 경 함경도에서 연변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연길에서 태어났고, 부모님 모두 연변사람이다. 그는 윤동주 시인이 다닌 용정 은진중학교를 졸업한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고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있다. 어머니가 15년 전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몇 개월 후 아버지 마저 알콜 중독으로 인한 간질환으로 6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는 삼남매, 누나는 연변에, 형은 한국에, 광일은 서울에 살다가 뉴욕에 왔다. 그의 아내도 연변 사람인데 식당에서 일하다 코로나 사태로 요즘 집에서 쉬고 있다. 그의 꿈은 언젠가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연변에 돌아가 떵떵거리고 살고 싶다고 하고 있으나 정말 귀국할지는 알 수 없다.

소련이 붕괴하기 직전인 1988년 당시 브로드웨이 상인번영회(현 경제인협회) 관계자들과 홍콩을 거쳐 광저우, 베이징, 상하이, 지린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홍콩에서 광저우 공항에 도착했더니 청년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수화물을 실어 날았다. 공항에 컨베이어 시설이 없었다. 베이징 상리라호텔에 묵었는데 자세히 보니 경리 직원들이 주판을 사용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국내선으로 지린으로 갔는데 승무원들은 바가지에 차를 주었다. 커피 한 잔, 주스 한 잔 얻어 마실 수 없었다. 가이드를 따라 마을회관을 찾았는데 모두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었다. 당시 들은 이야기는 연변에는 함경도, 지린은 경상도 출신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광일이는 처음에 연변에 같이 살다가 저희들끼리 싸워 경상도 사람들이 내륙으로 쫓겨 났다고 들었단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소련 여행 중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쉬켄트에 들려 고려인 집단거주 지역을 찾아 취재했다. 이들의 조상은 일제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이주 됐다가 어느 날 스탈린의 명령으로 밤기차를 타고 중앙아시아 타쉬켄트로 다시 이동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30여 년이 지났다. 소련 연방이 무너지고,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이 모두 독립하게 되었다. 인터넷 시대가 오고 한국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100여 년 전 기아를 피해 중국으로, 연해주로 떠났던 동포들은 기회를 찾아 고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지금 한국에는 수십 만 조선족, 수만 명의 탈북동포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 살던 광일이도 미국 바람을 타고 뉴욕까지 왔다. 요즘 플러싱에는 한인이 많지 않다고 한다. 자리 잡은 한인들이 교외로 나가고 그 자리에 조선족이 들어온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문명따라, 경제적 기회를 따라 떠났던 동포들이 돌아오고,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흩어지는 것인가.



뉴욕 일원에도 많은 중국계 한인이 있다. 그들은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읽고 쓴다. 미국에 먼저 와 자리 잡고, 영어 좀 한다고 우월감을 가지지 말고 중국 동포들을 따뜻하게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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