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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영원이라는 말

영원은 냉동우주라는 말, 신도 우주도 그 안에서는 움직임 없이 꽁꽁 얼어 멈춰버렸다는 말,// 웃는 너, 굴러다니는 네 영원을 통째 끌어다 냉동고로나 써야겠다고// 너는 영원이 되지 못한 것들을 냉동고에 넣어둔다./ 익다만 곤달걀을, 꼬투리로 남은 사과를,(…)윙윙윙 저 소리, 지구의 뒤숭숭한 자전음 같구나. 잠들 수 없네 투덜대는 너.

-류인서 시인의 ‘개종’ 부분



영원이라는 말,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남루해져 가는 육신과 영혼의 은신처로 삼을 곳을 찾고자 하는 일, 화분에 심어진 일년생 꽃이 추위가 오자 뿌리의 보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절규 같은 현상, 단명한 이들이 우주 저편을 향해 내려달라고 호소하는 동아줄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



냉동고에서 얼어 있는 음식들, 꽁꽁 얼어 있다는 건 썩지 않는다는 것, 형태와 신선도의 보존이 가능해서 안심된다. 뭐든 얼리려는 마음은 부패의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영원을 꿈꾸는 마음도 사라질 것에 대한 불안의 영구대비책은 아닌지.

가끔은 깜빡깜빡 대는 기억을, 점점 줄어드는 순발력을, 시들어가는 오감을 냉동고에 넣어 얼리고 싶어진다. 해동시키면 원상태로 돌아오는 마법 같아서 시간의 폭력으로 누추하게 변해가는 유한성의 공포를 물리칠 수도 있겠다.

영원히냉동우주라는 발랄한 상상력은 그래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냉동우주에서 영생불사를 꿈꾸는 일이 한 철 잠깐 살다 사라져야 하는 이들에게 감격이 되어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빙하 속에 묻혀 있던 400년 전 선태식물(이끼 식물)을 발견해 실험실에서 싹 틔우는데 성공했다는 뉴스를 듣기도 하는 요즘이고 보면 영원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냉동이 보편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자연임신이 어렵게 된 후지타 사유리라는 여성이 정자은행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해 아들을 낳아 화재가 되었다. 정자은행은 정자를 동결해 필요할 때 내어주는 기관이다. 도덕성 여부를 놓고 찬반이 엇갈리긴 하지만 그런데도 냉동이라는 보관방식은 다른 유사한 분야로 확장될 것 같다.

영원이라는 무한함에 대한 열망은 살아 있는 생명이 지닌 끈질긴 욕구 아닌가 싶다.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가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전자의 지속을 통해 영원을 도모하려는 욕망이라고 하겠다.

사람들은 정신과 영혼을 보관해 줄 냉동고가 없으므로 냉동우주인 영원을 끝없이 사모하는 모양이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우정을 바라지만 사랑도 우정도 영원하지는 않다. 시간 앞에서 변질하곤 한다. 영원한 생은 죽음으로 사라지고 영원을 꿈꾸는 욕망만이 지리멸렬하게 남는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절정기의 사랑을 동결하고 지란지교를 냉각시켜 영원을 확보하려고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냉동우주에선 신도 우주도 꽁꽁 얼어 꼼짝도 못 한다면 굳이 영원을 사모할 일이 뭔가. 얼어 있다는 건 일종의 잠일 터, 잠들어 있는 생명이나 감정은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겨울은 잠의 예행연습, 그리고 잠은 죽음의 예행연습, 죽음은 영원의 예행연습. 그러므로 영원은 죽음 이후에나 가능한 세계다. 무한이란 유한의 한계를 벗어나고서야 다다를 수 있는 피안, 인생은 유한하므로 오늘이 더 값진 건 아닐까.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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