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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숫자 속에서

우리는 숫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번호를 붙이기를 좋아하고 번호에 맞춰 살기도 합니다. 몇 번 학생이 되고, 전화번호로 기억됩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만날 것인지 결정해야 하고, 나이가 몇 살인지. 우리는 숫자 속에서 사고 있고 갇혀 있습니다.

진법(進法)은 수를 표기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일정한 숫자가 되면 새로 숫자를 시작하는 방법입니다. 수를 하나의 묶음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이러한 틀 속에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것은 10진법입니다. 0부터 9까지 세고 나면 10이라는 숫자는 다시 1과 0으로 이루어집니다. 한자로 표기하면 십(十)이 지나면 다시 십 일로 새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느낌으로는 금방 다가오지 않지만, 전자계산기의 내부 표현 방식으로는 16진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정보 통신에서는 0과 1만 사용하는 2진법을 사용하죠. 머리로는 알고는 있어도 내 삶을 가두어 두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10진법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우리의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일 겁니다. 손가락을 다 피거나 오므려서 10이 되면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10진법은 원초적으로 익숙합니다. 물론 한 손만 사용하면 5진법이 되죠. 닷새마다 열리는 오일장은 5진법의 대표입니다. 장날이 지나고 나면 다시 날짜가 시작되는 겁니다. 오일장이 중요한 사람에게 날짜는 5일 단위로 흘러갑니다. 한 달이라는 개념도 우리에게는 명확합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그리고 그믐달로 지나가는 30일이라는 개념은 반복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일 년이라는 개념도 달이 반복되어 12번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12진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유일 겁니다. 12달이 자연스럽고, 12시간이 자연스럽습니다. 12진법이 5번 반복되면 60진법이 됩니다. 60분이 자연스럽고, 60초가 자연스럽죠. 왜 60으로 나누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수긍하는 겁니다. 띠는 12간지로 나뉘고 10진법과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환갑은 중요한 사이클이 됩니다. 60년 동안 인생을 한 바퀴 돈 겁니다. 새로 시작하는 겁니다.



종종 우리는 오늘 날짜는 모르겠는데 요일은 알겠다고 이야기하는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이 7진법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불교의 49재도 7진법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날짜는 30진법이나 31진법으로 돌아가지만 7일마다 다시 새로운 요일을 맞이합니다. 보통 달력에는 일요일이 시작으로 되어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월요일을 시작점으로 생각합니다. 토요일까지 근무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밤을 즐기자는 노래가 많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은 요일로 보면 7진법의 세상을 사는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5진법의 세상을 사는 듯 보입니다. 주말은 떼어놓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수의 사이클인 진법을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갇혀있다는 것은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생각을 틀 속에 가두기도합니다. 시간도, 요일도, 달도, 나이도 나를 고정관념 속에 빠지게 합니다. 모두 숫자입니다. 나이도 시간도 숫자입니다. 숫자라는 틀에서 벗어나서 나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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