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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호박 덩굴에 맺힌 인연

코로나로 3월부터 문학반 모임이 없으니 문우를 만나지 못하고 지낸다.

모두가 숨이 막힌다. 사람이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우리에게 이런 세상이 다가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뉴노멀’이라는 이상한 단어가 우리 삶이 되었다. 모두가 외계인처럼 마스크를 써서 눈빛만 알 뿐 상대방의 기분을 알 턱이 없다. 세상이 몸살을 앓는다.

9월 초, 세리토스에 사는 문우가 연락이 왔다. 문학반 모임에서 그녀는 유난히 가슴이 따뜻하게 기억되는 회원이었다. 수필 반에 올 때 가끔 맥반석 계란을 만들어 가지고 왔는데 식지 않도록 수건에 싸서 가져오던 섬세함이 마음을 끌었다. 자신만의 성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그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올해는 호박 세 그루를 심었다. 남편이 호박 울타리를 만들어주어 호박이 땅에 뒹굴지 않고 덩굴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 아래를 향해 열매를 내놓아 주어서 눈 호강을 실컷한다고 했다. 맛이 좋고 실해서 호박을 주고 싶다고 했다. 당시 추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날씨는 화씨 104도였다. 날씨가 대수냐 싶어 땀을 닦으며 달려가 호박을 선물로 받아 왔다.

깨끗하고 매끈한 호박이다. 초록색이 예쁜 호박 2개다. 비닐로 싸인 호박 위에 149라고 쓰여 있다. 전을 부치니 씨가 없어 버터같이 맛있다. 미국 와서 이렇게 맛있는 호박은 처음이다. 이것이 행복 아니던가.

올해 그 집에서 나온 호박이 현재까지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딸 때마다 비닐로 싸서 번호를 적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열리는 대로 팔았으면 호박 농사로 족히 몇만 달러는 벌었을 것이라고 농담도 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나눠 먹기에도 바쁘겠지만.

어느 날. 전화가 또 왔다. 호박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일조량도 짧고 기온도 떨어진 가운데 대여섯 개 열리긴 했는데 자라지를 않아 호박 농사가 끝물이란다. 또 얻어왔다. 219번이라고 적힌 것으로. 날씨가 시원찮아도 그녀는 240번 호박을 기록할 수 있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집 호박에 중독이 되었다. 호박 중독자! 이런 중독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어 웃음이 난다. 마켓에서 파는 이탈리아 호박 맛도, 멕시칸 호박 맛도 아니다. 한국 마켓에서 파는 한국 호박 맛과도 다르다. 비교할 호박이 없다. 비료 탓일까? 정성 탓일까? 어디서도 이렇게 맛난 호박은 못 먹어봤다. 호박전도 된장찌개도 호박볶음도 이 호박은 맛이 백점 플러스다.

11월 중순경에 문우는 또 만나자고 했다. “이젠 추워서 열린 것도 크지를 않네요.” 더는 안 열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열렸으니 행운이라며 2개를 또 줬다.

모든 걸 간편하게 줄여가며 사는 것도,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도, 사람에게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것도, 늘 넉넉히 나누는 것도, 그녀를 보면서 깨닫고 배운다.

작은 행복으로 삶을 가득 채울 줄 아는 그녀가 존경스럽다. 인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는 것이라 했는데 어려운 코로나 기간에도 인연은 호박처럼 맺혔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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