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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화초담

담장 앞에 서면 무미건조가 막아선다. 때로는 그 담의 색깔이 검정이면 깊은 슬픔까지 느껴진다. 실상은 담장의 색깔이 무엇이든지 거기에는 늘 슬픔이라는 것이 배어 있음을 지나온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여기까지가 너이고 거기서부터 나이다 말하고 있는 우리 사이의 관계 설정이 잠시 하나가 아니었나 했던 순진함을 깨우쳐주는 듯 하다.

그래도 서민들의 싸리나무 울타리는 극도의 이기심보다는 굳이 말하자면 여기까지지만 무슨 상관이랴 하는 인정이 묻어난다. 돌로 쌓은 담은 굴러다니는 돌을 모아서 만들어 견고해 보이지만 담쌓기 경쟁에 아주 빠져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돌을 끌어와 네모지게 다듬어 차곡차곡 높여 놓은 그것에는 차가움이 묻어난다. 계획하고 벽돌로 쌓은 담은 이제는 넘어오지 말라는 경고가 전해진다. 무한정 만들어지는 벽돌은 또한 무한정 연장되는 담장을 만들어 낸다.

여러 동네를 구경 다니다 보면 이 정 없는 담장에 여러 가지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사람들 앞으로 건조하게 나오던 무표정 얼굴들이 조금씩 웃음기를 담고 있어 동네 길이 화사해지는 듯 하다. 우리 조상들이 벌써 그렇게 해오던 심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이다.

그냥 쌓아 올린 담장이 아니고 그 밋밋한 벽 속에 여러 재료나 기교로 화초 무늬를 넣어 담장에 웃음기를 더한 우리네 그런 담을 화초 담이라 불러왔다. 화초라는 말이 꽃밭을 떠올리게 하는 기분 좋은 말이어서 화초 담이라 불리는 그것은 갈라놓기 담장임에도 불구하고 짐짓 기분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그 담장이 그저 너와 나를 따로 놓는 것이 아니고 그런데도 담장 이쪽과 저쪽이 사이좋게 지내고자 하는 품성을 보여주고 있다. 멋, 해학, 웃음, 여유가 떠오르게 하는 화초 담이다.



멋없는 담장들이 많이 있다.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정이라는 감성이 있다고 흔히 말해지는데 바로 그 정이라는 것이 자리할 수 있는 조그만 틈도 허락하지 않는 빡빡한 담벼락만이 능률을 앞세우며 우리 앞에 불쑥불쑥 솟아 있다.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국경 장벽, 대화 몇 마디 잇지 못하고 단절되는 지역 간 세대 간 민족 간의 대화 단절의 벽,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 장벽 등이 길을 막고 있다. 오랜 시간을 보내며 어지간히 헐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게 안 보이게 존재하는 그 멋없는 장벽 앞에서 또 크게 실망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파란 편 너는 빨간 편 하며 갈라서서 싸우게 하는 담장 같은 현실 앞에서 그러나 화초 담을 떠올리며 위안과 희망과 내일의 하나 됨을 그려본다.

담장 속에서 화초가 피어나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보통의 경우는 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그것은 아주 견고하고 또 무서운 형상을 붙이거나 만들어 놓아 위협하는 모양이지만 화초가 있는 담은 막아서는 뜻은 그다지 강하지 않고 발을 높이면 너머를 볼 수 있는 높이에 향기 나는 꽃과 식물을 살려내어 사이좋다는 관계를 불러올 것 같은 마음이 그곳에 있다. 정을 품게 하여 여유로움을 만들어 내고 질식하지 않고 길 끝으로 나아가게 하는 웃음이 있는 화초 담이 내것 네것 가리는 금긋기 세상에서 꽃밭처럼 아름답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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