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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석호필 백신

이름 석 자만으로 가슴 뛰게 하는 사람이 있다. 캐나다 출신 수의사 프랭크 스코필드(1889-1970) 박사도 그중 하나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8월 세브란스에 세균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1917년 선교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한국어 이름을 지었다. 철석같은 굳은(石) 의지와 호랑이(虎)의 마음으로 한국인을 돕는(弼)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석 자가 바로 석호필(石虎弼)이다.

석호필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하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벌어진 그해 4월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현 화성시 향남읍)에선 일본 군경이 조선인 23명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제암리 학살사건이다. 일제는 출입문을 못질하고 총을 쏘며 교회당에 불을 질렀다. 석호필은 사건 발생 이틀 후 현장을 찾아가 유골을 수습했다. 학살의 장소를 사진에 담아 세계에 알린 이가 바로 그다. 현장을 담은 흑백사진은 백 년이 지난 후에도 일제의 만행을 뚜렷하게 고발하고 있다.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가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이유다. 1968년 건국공로훈장을 받은 그는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외국인 최초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석호필이 한국에 남긴 선물은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백신 연구다.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한반도에도 상륙했다. 현장에 뛰어든 석호필은 조선인 환자의 증상을 관찰해 기록으로 남겼다. 미국 의학회지에 1919년 실린 ‘한국에서 발생한 판데믹 인플루엔자, 사례와 병인(病因)’이다. 한반도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의학 논문이다.

“한국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1918년 9월 시작했다. 시베리아를 통해 유럽에서 전파되어 왔음이 분명하다. 질병은 철도를 따라 북쪽에서 남쪽으로 퍼졌다. (중략) 일본 당국에서 정보를 받지 못해 정확한 환자와 사망자 수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교사와 학생의 발생률이 높아 학교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석호필은 백신 개발을 위해 환자 20명의 가래를 모아 분석했다. 아쉽게도 최종 개발로 이어지진 못했다. 남탓과 핑계가 난무하는 지겨운 세상에 바이러스마저 다시 활개친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조선인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간 석호필이 그립다.


강기헌 / 한국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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