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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코로나가 가져간 금혼식 잔치

떠올리면 기분 좋아지고 절로 흥이 나는 잔치는 모든 것이 풍성해서 더욱 좋았다. 음식이 풍성했고 웃음이 넘쳤으며 서로 나누는 마음들이 넉넉했다.

어린 시절 동네 큰 잔치는 으레 환갑잔치였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시절이어서 그랬을까 환갑을 맞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예의가 깍듯했다. 오복 중의 하나인 건강의 복을 타고났다는 부러움도 받았다. 어른들 틈에서 발돋움을 하고 올려다 본 높은 잔칫상은 산해진미가 겹겹이 쌓여있어 그날의 주인공은 음식 속에 파묻혀 아주 작게 보였다.

잔치 중 1순위였던 환갑잔치가 언제부터인가 사라져가고 있다. 백세 수명 시대가 되기 훨씬 전부터 “환갑생일 축하해요”하면 무슨 환갑이냐고 손사래를 내젓곤 했다. 하기야 어렸을 때 보았던 환갑잔치의 주인공이었던 작은 노인에 비하면 요즘 환갑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젊고 건강하다. 의술도 발달하고 영양도 좋아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돌잔치는 점점 성대해져서 태어난 지 1년된 아이의 잔치인지 어른들의 잔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전에는 돌떡을 이웃과 나누어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액땜’한다는 붉은 수수경단이 필수로 들어있던 돌떡을 나누며 1년 동안 무탈하게 자라준 아기를 축복해 주었다.



많은 형제와 북적거리며 자란 환경은 일상이 잔치였다. 언니 오빠의 친구들이 번갈아 수시로 찾아와 놀고 먹고 심부름을 시키려고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집안 가득 울리곤 했다. 쌀 한 가마 들여놓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졌단다. 장성한 자식들은 모두 떠나고 어린 자식들만 남았을 때 힘들고 어려웠을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어머니는 말했다.

잔치 기피증은 아니지만 번잡스러운 것은 질색이어서 웬만한 것은 대충 넘어가며 지내왔다. 그랬어도 단 하나의 잔치만은 그럴듯하게 지내고 싶었다. 금혼식. 남남이 만나 결혼해 50년을 살아온 노 부부에게 엿볼 수 있는 삶의 빛깔이 보기 좋았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좋았다.

젊은 시절, 만약 건강이 허락해서 금혼식까지 산다면 그 잔치만은 번잡스러워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지인들 모아 놓고 50년 금실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 견뎌온 인내심을 뽐내고 싶었다. 금혼식에 초대하면 등 파인 드레스 입고 기꺼이 참석하겠다던 후배도 있었지만 벼르던 제사에 물도 못 떠 놓는다는 옛말대로 벼르던 잔치가 마스크 쓰고 마주 앉아 눈만 껌벅거리게 생겼다.

신혼여행 길에 들렀던 범어사 뒤뜰엔 붉은 연시가 코발트색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셨다. 감잎은 모두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연시는 서리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해 이후로 해마다 찾아오는 감 익는 계절, 오십 번째 맞고 있다.


최근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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