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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루스 산책] 응답하라, 테스형!

트로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트로트의 복고를 넘어 트로트의 전성시대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트롯신이 떴다’ 등으로 이어진 TV 트로트 프로그램을 타고 트로트는 중장년층을 넘어 1020세대들 까지도 끌어들이는 대박을 이루고 있다.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열풍보다는 광풍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그 바람을 타고 새로운 신인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인기는 하늘 끝을 모르는 듯싶다.

내가 한국에 살 땐 존재하지 아니하던 댄스음악, 아이돌 그룹, K-팝에 문외한인 나 같은 구세대에게는 향수에 흠뻑 젖을 기회를 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트로트의 열풍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답답하고, 우울하고, 심란한 국민을 위로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다행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장기간 침묵하던 이 시대 최고의 가수라는 나훈아까지 이 열풍에 가세해서 그가 손수 작사 작곡했다는 신곡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를 불러서 타는 불에 기름을 부어놓은 모양새다. 다음 달 부산에서 개최 예정인 그의 연말 콘서트 티켓이 8분 만에 전부 매진되었다는 보도다. 나훈아의 콘서트는 서울, 대구로 계속될 예정이다.

TV를 별로 보지 않는 나는 처음에 테스형이라고 해서 이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나훈아가 노래에서 부르는 호칭이다. 1000년을 40대조로 계산해서 거의 100대조 할아버지뻘인 소크라테스를 호형호제함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일까만, 그냥 노랫말의 애교로 보아주니 그럴듯하다. 신선하고 충격적이며 나훈아의 창의성이 돋보인다. ‘테스형’이 명성을 얻으면서 공연 티켓 구하려고 “테스형 직접 보자!”고 난리라니 누가 테스형인지 혼란스러워진다. 나훈아의 새로운 예명이 탄생한 것이다. 2000년도 훨씬 전의 소크라테스가 무덤에서 짐짓 미소 지을지 모를 일이다.



가사에서 나훈아는 인생과 세상사에 대한 질문을 날리고 있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사랑은 또 왜 이래”, “저 자신을 알라며 툭 뱉고 간 말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등 노랫말을 찬찬히 새겨들으며 가사 속에서 던지는 나훈아의 물음에 소크라테스는 무어라고 응답했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다른 어려운 인생사와 세상사는 접어두고라도, 언제 그 끝을 보게 될지 모르는 코로나 팬데믹의 위협 속에 사회적 거리 두기로 서로 피하고,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가는 때 우리 생활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한탄하는 그의 노랫말이 대중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테스형’도 비대면 콘서트에서 부른 노래다.

‘테스형’을 처음 불러 대박을 터뜨린 추석 콘서트 뒤에 나훈아가 어떤 방송 프로에 나와 이런 말을 해서 관중을 웃겼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 그래서 테스형에게 물어봤다.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 물어봤더니 테스형도 모른다고 하네요.”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가장 강력했던 맹주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긴 전쟁 그리고 연이은 스파르타와의 30년 전쟁에서 패해 부패와 타락으로 혼돈과 쇠퇴의 길을 걷고 있던 어려운 시기를 살았다. ‘너 자신을 알라’며 올바르고 정의로운 길을 제시한 그는 제자의 질문에 즉답을 주는 일이 없었다. 문제에 대한 정답과 해결책은 질문자 스스로 깨달아 찾아내야 한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즉답 대신 주제에 대한 각가지 의문을 먼저 제기하여 비논리적인 모순을 제거함으로써 보편타당한 진리에 이르고자 했다.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고 하거니와 소크라테스 자신은 자기는 정답의 분만을 돕는 산파일 뿐이고 정답을 분만함은 임산부 스스로 할 일이라고 했다.

“훈아야, 해답은 네가 스스로 찾아야 해. 산파는 도우미일 뿐이야. 그나마 내가 네 곁에서 산파 노릇을 못 해주는 것이 못내 아쉽구나.” 멀리 아득한 곳에서 들릴 듯 말듯 메아리 되어 오는 테스형의 소리.


태종수 / 전 아칸소대 정치학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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