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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신대륙 개척 이야기

신대륙 개척 이야기다. 아메리카 대륙은 1492년 콜럼버스 발견 후 100년 가까이 방치되다 1588년 영국이 무적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뒤 지배권을 잡았다지만 여전히 환상의 땅 그대로였다. 해변에는 다이아몬드가 깔렸고 인디언들은 금 냄비로 밥을 짓는다는 거짓 소문만 무성한 채 말이다.

그러다 1585년 월트 롤리경이 노스캐롤라이나에 로아노크(Roanoke) 식민촌 건설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단 한 사람도 생존하지 못한 채 전멸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마침내 1606년 12월, 런던의 버지니아회사가 144명을 3척의 범선에 실어 신대륙으로 보낸다. 또 다른 식민촌 건설을 위해서다. 배는 다음 해 4월 26일 헨리 곶(체스피크 만)에 도착하였고 48Km를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제임스타운에 정착촌 팻말을 꽂는다.

그러나 로아노크의 전철을 밟는 듯했다. 구성원들은 식민촌 건설과는 거리가 있는 죄수, 도망자 및 일확천금에 들뜬 건달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내부 반란이 잦았고 지대는 낮고 습해 온갖 질병과 해충에 취약했다. 거기에 식량 및 보급품 공급이 안 되니 아사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존 스미스와 존 롤프 같은 강력한 지도자들이 있었기에 타운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제임스 타운이 북미 최초의 식민촌으로 성공한 데는 담배라는 신묘한 인디언 토산품 때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존 롤프가 토종에 자메이카 종을 접붙인 신종은 영국은 물론 온 유럽을 단숨에 애연가들로 넘쳐나게 하였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함은 경제 기본! 제임스 타운에 돈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지원자 행렬이 영국을 넘어 폴란드 및 네덜란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1619년 기록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흑인 노예가 끌려왔고 90명으로 조합된 여성 전용 선단까지 투입되어 담배 60kg에 아내가 팔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1620년 출항한 메이플라워가 어디로 행했겠는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여호와의 말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강권 적으로 막으신 뒤 미리 점 찍고 예비해 두셨던 곳으로 인도하셨다. 그러니까 1608년, 헌터라는 영국 함장이 이끈 무역상들이 뉴잉글랜드 지역에 먼저 들어와 인디언들을 잡아 스페인 부자들에게 노예로 팔아넘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스콴도(Squando)라는 청년은 운 좋게 스페인의 한 친절한 사제에 팔려, 교회에 일하면서 예수 믿고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 그 뒤 사제의 도움으로 영국으로 보내져 존 스탠리라는 사람의 집에서 일하게 되고 곡절 끝에 10년 만에 그리던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고향의 지인들은 대부분 죽고 촌락은 폐허로 변해있었다. 그래도 그는 낙심치 않고 허물어진 가옥을 개축하고 황무지를 일구던 어느 날 눈앞에 메이플라워가 나타난 것이다. 순간 분노의 감정이 치솟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먹을 것을 나눠주며 정착을 헌신적으로 돕는다.

15세기 초 신대륙을 찾은 부류는 제임스 타운을 찾은 황금파와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신앙파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담배와 흑인 노예라는 악한 전통을 심어 결과적으로 미국을 병들게 했지만 후자는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선한 사업을 통해 미국 건국의 시조가 되었다. 이 시간 우리도 후손을 위해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며 2020년을 마감하자.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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