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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묵화’)

참으로 따뜻한 풍경입니다. 하루 일을 끝내고 물을 먹는 소의 목덜미에 할머니의 손이 얹혀집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으며, 서로 발잔등이 부었으며, 서로 적막합니다. 할머니에게 소는 가족입니다. 함께 고생하고 살아가는 내 식구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가에서는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습니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노부부가 절에 가서 천도제를 지내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천도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죽은 소를 위한 것입니다. 죽은 가족, 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부부에게는 40년 가까이 부려온 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인데 믿기지 않는 나이입니다. 노인은 귀가 잘 안 들리지만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듣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소 먹일 풀을 베기 위해 매일 산을 오릅니다. 소는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늙었지만 노인이 고삐를 잡으면 논밭을 갈고 수레 가득 나뭇짐도 마다치 않고 나릅니다.



소가 죽자 노부부는 묻어줍니다. 노인이 죽자 소 곁에 묻힙니다. 부인도 그 곁에 묻힙니다. 이 세 무덤을 봉화 사람들은 워낭소리 공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다음날 소는 팔려갔다/ 보았다. 죽으러 가는 그 어미의 걸음걸이를, 꿈쩍 않고 버티던 그 힘 그 뒷발질을, 들입다 사립짝을 향해 내뻗던 뒷발질을, 동구 앞 당산 길에서 기어이 주인을 떠 박고 한달음에 되돌아와 젖을 먹여주던 그 어미의 평생은 입에서 내는 흰 거품이었다.” (조오현의 ‘어미’)

소 모녀에 대한 시의 일부입니다. 젖도 못 뗀 새끼를 두고 주인 손에 끌려 팔려 가다가 새끼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주인을 들이박고 한달음에 달려와 불은 젖을 물리던 어미였습니다. 이제는 그 새끼가 자라 어미가 하던 일을 하며 고된 나날을 새김질로 흘려보냅니다.

자기를 애지중지 돌보던 주인 할머니가 죽자 거간꾼에게 팔려갑니다. ‘사람도 죽는데 못 죽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떠밀려 도살장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 순간 새끼의 긴 울음소리를 아득히 듣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함께 오래 살았던 소는 영물이 되어 실제로 자기가 죽는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요.

지난여름 홍수 때 구례 농가 지붕 위로 피신한 소들이 화제였습니다. 그때 구출됐던 소 가운데 6살짜리 암소가 구조 다음 날 새끼 두 마리를 낳았지요. ‘희망이’ ‘소망이’라는 이름의 송아지 자매가 잘 자라고 있다고 새해 첫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는 버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우골탑(牛骨塔) 세대입니다. 부모님들이 소를 팔아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도 했지요.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젖소의 젖을 짜다가 우두(牛痘)에 걸린 적이 있는 여인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 종두법(種痘法)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백신(Vaccine)은 ‘암소’를 일컫는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지요. 우리 인간들은 소에게 참으로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소는 평생 일만 합니다. 힘은 엄청나나 코가 꿰여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이런 소는 우직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인간사에 하도 거짓과 기교가 넘쳐나니 오히려 소 같은 우직함이 그립습니다. 본대로 믿고 싶습니다.

양부모의 학대에 숨져간 어린 아기 불쌍한 정인이를 보며 인간의 위선과 야만에 절망합니다. 이번 한파에 내복만 입은 만 네 살 여아가 거리를 헤매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아기가 귀한 시대, 조부모들까지 나서 키우는 시대에 학대받거나 방임되는 아기들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것입니까?

팔려 가던 소도 새끼 울음소리가 들리자 주인을 들이박고 달려와 젖을 물리는데 갓난 자식을 버리는 소보다 못한 인간들도 있습니다. 올해는 소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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