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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모의 ‘고춧가루’와 영화 ‘미나리’

한국에 사는 어머니는 텍사스 이모와 절친하다. 이모는 1970년대 국제결혼을 했다. 이모 말에 따르면 그때 비행 노선은 직항이 없어 하와이를 일단 찍고 본토로 이동했다고 한다. 국제전화도 귀하던 그 시절 김포공항에서 텍사스 중부까지 날아간 이모. 인터넷과 화상통화가 일상인 요즘 이모의 이민 첫날 기분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이후 외할머니는 큰딸을 잃어버렸다며 대성통곡해 여러 번 쓰러지셨다 한다.

칠십을 바라보는 이모는 지금도 텍사스에 산다. 딸과 아들은 혼혈이지만 마음속 한국 정서가 강하다. 좋아하는 음식 취향, 습관적으로 내뱉는 한국어 표현과 행동거지를 보면 딱 한인이다. 메릴린 스트릭랜드 연방 하원의원이 취임식 때 곱디고운 한복(엄마가 자신을 알아보기 쉽게 취임식 의상으로 한복을 선택했다)을 자랑했듯이 “나도 코리안이야”라고 강조할 때도 많다. ‘해프 코리안’이라는 외부 시선은 정체성 강화라는 역설도 낳았다.

텍사스에 처음 갔을 때 이모는 이민 직후 살았다는 집을 조카에게 보여줬다. 이동식 트레일러는 아니었지만 단칸방 수준이었다. 이모는 바깥 세계가 무서워 집에만 있다가 곧 식당 일을 시작했다. 생존 영어도 그렇게 배웠다. 반세기 가까운 삶을 텍사스에서 보낸 이모. 지난 세월 이야기와 무게를 짐작하기 어렵다. 어학연수와 보장된 직장으로 시작한 조카의 이민생활 10년 정착기는 새발의 피다.

그런 이모가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것은 ‘고춧가루와 들기름’이다. 한국에 갔을 때 어머니가 “LA 도착하면 거기서 이모한테 소포로 보내라”며 고춧가루를 한가득 담았다. 봉지로 입구를 꽁꽁 싸맨 들기름 페트병까지 캐리어에 담으며 대략 난감했다.



“엄마 텍사스도 한인마켓 커, 입국심사 때 걸리면 창피하다니까!”

이후 엄마는 국제소포 요금 25만 원이 안 아까운지 고춧가루와 들기름을 텍사스로 부친다.

한인 이민자 가족의 삶을 담은 화제의 영화 ‘미나리(MINARI)’를 봤다. 1980년대 아칸소주 시골농장을 일구는 한인 이민자 가족 삼대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감정이 오간다. 주인공 한인 가족의 의상과 소품을 보면서 한참 웃다가 먹먹함까지 밀려올 줄은 몰랐다. 엔딩타이틀 음악이 흐를 때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해갈도 기쁨을 안긴다.

영화배우 샌드라 오는 미나리 시사회 사회를 보는 내내 울었다. 한인 가족 가장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 스티븐 연도 복받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반면 할머니 역할인 윤여정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미나리가 끝나자 미국 사람들이 울면서 고맙다고 해 의아했다고 한다.

샌드라 오는 “미나리 영화 속에 우리 부모가 있다. 온몸의 피부로 느꼈다. 코리안 아메리칸이 영화를 보면서 ‘한’을 풀 수 있었고 치유의 기쁨도 얻었다”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스티븐 연은 “이 영화는 (이민 온) 부모님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했다. 극 중 역할을 할 때 곳곳에서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한인 2세도 미국에서 살며 깊은 고립감을 느낀다. 영화는 한인 세대 간 골이 깊어진 감정을 나눌 수 있게 했고 또 서로를 붙잡게 해준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 이모가 고춧가루와 들기름에 집착하는 이유도 알게 됐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한과 치유를 경험하고 싶은 분께 영화 미나리를 권한다.


김형재 /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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