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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양털 깎던 날

지난 금요일은 리차드 랜치에서 양털 깎는 날(Sheep Shearing Day)이었다. 양털 깎기는 랜치의 가장 큰 반(Barn)에서 진행됐다. 양들은 길게 일렬로 서 있었다. 맨 앞에는 경비병 역할의 양이 한 마리 나란히 줄을 지어 서 있는 양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서 있다. 앞에 아무도 없으면 양들이 앞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게 맨 앞에 얼굴마담으로 끝날 때까지 세워둔다고 한다.

털을 깎는 양들은 모두 임산부들이다. 봄에 낳아 다 자란 중간 양들은 이미 가을에 고기용으로 팔려 나갔고, 여기서 털깎기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은 씨받이라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양의 사정은 모르고 그동안 맛있다며 먹었던 양고기 생각이 나서 기분이 어쩐지 떨떠름했다.

양은 스스로 털갈이를 하지 못하므로 사람이 털을 깎아줘야 한다. 양털을 일 년에 한 번씩 깎아 주는 이유는 여름의 피부병을 예방하고, 새끼들이 엄마 젖을 쉬이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양털 깎기는 문을 열고 양의 두 앞발을 들어 꺼내서 자신의 두 발 사이에 고정하고 연장으로 털을 깎기 시작한다. 깎는 작업엔 일정한 순서가 있다. 가슴에서 시작해 등으로, 다리로, 순서대로 리드미컬한 동작으로 능숙하게 쭉쭉 털을 깎는데, 양들은 아프지 않은지 마치 애무받는 것 모양 얌전하게 몸을 맡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가끔 야단법석하며 비명을 지르는 양이 없진 않다. 때로는 연장에 피부가 찔리거나 찢어져 피가 나기도 한다. 이렇게 한 마리 털을 깎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3분, 혹은 4분이다.

털을 깎는 작업은 마치 레슬링 시합을 보는 것 같았다. 털북숭이로 두루뭉술한 무거운 양을 오직 한 손과 두 다리로만 컨트롤하면서 요리조리 돌려가며 쉬지 않고 털을 미는 모습이 그러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흙으로 도자기 만들 때 내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반죽한 흙을 얹어 놓고 물레를 돌리던 기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양털 깎기 시기는 2월부터 5월 말까지 한시적이다. 그래서 양털 깎는 이들은 대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12년 동안 리차드 목장에서 털을 깎는 조장 라이언은 원래는 목 수일을 하고 있다.

양은 우리 인간과 참으로 오랫동안 공생해온 동물이다. 지금으로부터 1만년 혹은 1만1000년 전부터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가축으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당시 양은 야생 산양이었으나 오랫동안 인간과 살아오면서 품종이 오늘날의 순한 모습으로 진화해온 것이다. 유목민들은 양을 고기와 털 뿐만 아니라 가죽은 물론, 뼈까지 깎아서 각종 가재도구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양 우유로는 요거트를 만들어 먹고, 양 오줌은 모아 빨래도 했다고 하니 유목민들에게 양이란 생존을 위한 거의 절대적 존재였다.

양과 우리 인간이 그렇게 밀접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양을 보면서 또 다른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을 양같이 순하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양이라 불린다.

마침 종교적으로 지금은 사순 시기이다. 양들은 지금 털을 깎고 여름을 대비하지만, 우리는 부활절을 준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가다듬는 시기이다. 말도 안 되는 비유지만, 털을 깎고 깨끗해진 양처럼 나도 깔끔하게 몸과 마음을 가꿔 부활하시는 그분을 맞고 싶다는 희망을 품는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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