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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인디언의 메시지 ‘핀 페 오비’

3월이다. 겨울이 지나간다. 절에서 보내는 겨울이 내겐 마치 태국의 코끼리 조련법 ‘파잔(Phajaan)’을 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어린 코끼리를 기둥에 묶어두고 때리는 잔인한 코끼리 사육법 말이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코끼리는 성장해서도 나무 기둥에 묶어두기만 하면 도망치지 못한다는 바로 그 사육법. 숱한 자연현상이 나를 암자에 묶어두고 괴롭히는 느낌이었다.

어디도 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하는 잃어버린 일상 또한 오래전 행자 시절로 돌아간 듯 답답했다. 뭔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온통 하지 말라는 얘기뿐이다. 예전엔 가장 적극적인 삶의 저항이 ‘멈춤’이었는데, 이제는 도리어 ‘멈춤’을 강요당하고, 가는 곳마다 검열을 통해 ‘존엄성’에 대한 가치가 무너지는 세상이 된듯하다.

행자 시절을 떠올리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그때 내가 좋아하던 스님이 있었는데, 35살에 지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만나보고 싶어 찾아가고자 했으나, 당시 은사스님의 반대로 입적할 때까지 못 만났다. 막 출가한 행자니까, 묶인 코끼리처럼 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떠나는 이의 마지막 얼굴을 봤어야 했다. 은사스님 말씀을 너무 잘 들은 그때의 내가 못마땅해 여태 아픈 후회로 남았다. 물론 덕분에 큰 교훈도 얻었다. 그일 이후로 지금껏 가급적 누군가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 하는 후회는 결코 남기지 않으려고 한다. 인생은 내가 저지른 일보다 해보지 못한 일들로 인해 더 후회하는 법이니까.



언젠가 아메리카 인디언의 메시지 중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핀 페 오비(Pin Pe Obi).”

“저 산꼭대기를 보라.”

테와족의 어느 어르신이 달리기를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했던 얘기다. “네가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언제나 산꼭대기를 보는 것을 잊지 마라. 더 큰 것을 보라는 거란다. 기억하거라. 어떤 문제도, 어떤 어려움도, 그것이 아무리 어마어마해 보이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오로지 산꼭대기에만 집중하거라. 그것이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가르침이란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산꼭대기에서 만나자꾸나.”

여태 나는 산꼭대기를 보며 살아온 적이 없다. 그와 비슷한 이상도 꿔본 적이 없다. 청년들에게는 꿈을 품고 살라고 말했지만, 정작 출가한 자신은 ‘깨달음’이라는 원대한 꿈보단 눈앞의 현실과 인간관계에 더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이 인디언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만약 좀 더 일찍 나만의 산꼭대기를 마음에 품었더라면, 숱한 어려움도 수월하게 넘겼을지 모른다고. 어쩌면 삶의 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다시 3월이다. 매해 반복되지만, 3월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결정하고 추진하기에 잘 어울린다. 칼과 도끼와 나무로 이루어진 ‘새로울 신(新)’이라는 글자 의미가 가장 다양하게 쓰이는 시기가 아닌가. 새 학년, 새 학기, 새 교실, 새로운 팀, 새로운 업무 등등.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은 늘 난처한 사건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늘 3월과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칼과 도끼로 나무를 다듬어 무언가를 창조해 내듯,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일들을 쪼개고 다듬기에 가장 좋은 때가 또 3월이기도 하다. 낡은 사고와 오래된 관념도 깨고, 묵은 원한과 미움도 풀고 조화롭게 다듬어 보자. 그 과정에서 겪는 사건·사고는 많아도 괜찮다. 일이 많은 만큼 기회도 많은 법이니까.

“쏘지 않으면 명중 확률은 0%”라는 말도 있다. 파잔 당하는 코끼리의 기억으로 일생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3월엔 절실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서서 저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걷자. 걸어보자.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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